두려움을 감추고, "Just enjoy the show."
두세 달의 짧은 기간 동안,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 년여가 지난 후였다. 아르바이트생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지금 와 생각하면 ‘고작’만 스물넷이었을 뿐이지만, 당시에는 그 나이가 어마어마해 보였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오죽하면 출근 이틀 째 되는 날, 차라리 매니저로 취직하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들었을까.
락커룸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고, 머리망을 단단히 고정하고, 생기발랄한 색깔의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사무실 입구의 지문인식기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 출근 시간을 기록했다. 삐빅, 소리를 확인하고 나면 사무실 문 옆에 달린 거울 앞에 서서 ‘안녕하십니까’를 세 번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나는 안녕하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낯설었다. 여긴 어디인가.
아르바이트하는 이십대 중반의 나를,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므라이스 전문점, 샤브샤브 뷔페, 빵집과 카페,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지만, 대학생일 때의 아르바이트와 대학을 졸업한 뒤의 아르바이트는 그 공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신입인 나를 가르치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치던 나의 어린 선임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언제까지 일을 할지, 어디로 취업을 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그 이유조차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야말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연장자면 연장자답게 일이라도 멋지게 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티켓 창구의 업무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했다. 뭔 놈의 할인제도가 그렇게나 많은지. 매점으로 파트를 옮기고 나서는 더 가관이었다. 라지 사이즈 콜라를 왈칵 엎질러버리기도 하고, 캐러멜 팝콘을 튀기는 기계 안에 버터 팝콘 전용 옥수수알을 부어버리기도 했다. 매일 매일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에 부쳤던 건 검표 업무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곳은 상영관의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직원이 출구 문을 열어줘야만 관객들이 나갈 수가 있는 구조였다. 열몇 개의 관에서 서로 다른 영화가 상영되기 때문에, 각각의 영화가 끝나는 시간을 잘 살펴야 했다. 검표 담당자 두세 명이 나란히 복도 입구를 지키면서 입장을 안내하다가, 영화가 끝나기 5분 전이 되면 한 명은 상영관 안에 들어가 대기했다.
조심스레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스크린에선 아직 영상이 한창이다. 숨을 죽이고 어둠 속에 멈춰 선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검정색이 스크린 전체를 뒤덮는 짧은 순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직전의 찰나에, 누구보다 먼저 계단을 재빨리 뛰어 내려가야 한다. 출구 문을 벌컥 열어야 한다. 쏟아지는 빛. 그 밝은 곳을 향해 웅성웅성 사람들이 걸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다시 복도 입구를 지켜야 한다. 또 다시, 새로운 영화가 시작될 것이므로.
사실 검표는 매점이나 매표에 비해 노동 강도가 가장 낮은 업무였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이 이 일을 좋아했다. 몇 주에 걸쳐 상영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마지막 장면의 대사와 OST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19금 영화가 상영 중이면 몇몇 아르바이트생들은 끝나기 20분 전부터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가 대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나는 그 단순한 일마저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통로 유도등 불빛에 의지해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마음만 급했지 눈앞은 컴컴하고 구두는 불편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일을 처음 맡았을 땐, 아예 문을 열지도 못했다. 몸을 기울여 무게를 실어서 앞으로 힘 있게 밀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탓이다.
철컥철컥, 아무리 손잡이를 움직여 봐도 문이 도통 열리지를 않았다. 관객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와 우리 갇혔네’ 하며 누군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관객 한 분이 손잡이를 밀자, 문은 거짓말처럼 쉽게 열렸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동료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을 받아야만 문을 열 수 있었던 나는 정말이지 모든 게 어설픈, 형편없이 나이만 먹어버린 스물네 살이었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위로가 되어준 유일한 존재는 팝콘이었다. 비틀비틀 녹초가 되었을 때쯤 매점으로 가서 CCTV의 사각지대에 숨어, 갓 튀겨 낸 캐러멜 팝콘을 입에 넣었을 때의 그 황홀한 맛! 바삭바삭 부서지는 식감과 혀 안쪽까지 사르르 녹아드는 진하디 진한 달콤함. 그 순간에는 정말, 취업이야 아무렴 어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쭉 일하련다, 라는 생각마저 들곤 했었다.
그리고 몇 주의 시간이 흘러 조금 숙달이 되어갈 무렵, 영화 <머니볼>이 개봉했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와 생김새―는 물론 훌륭했지만, 내 기준에 <머니볼>은 조금 이상한 영화였다. 내가 흔히 보아온 한국의 스포츠 영화, 열정과 협동심과 헝그리정신으로 똘똘 뭉쳐 팀의 승리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영화들과는 다르게, ‘트레이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선수들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다루면서 돈으로 가치를 환산하고, 마음대로 배치하고 또 마음대로 상대편과 교환하고, 그런 방식이 낯설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을 3분 남긴 시점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눈앞이 흐려지고, 가슴속에 거대한 폭풍우가 일어났다. 눈물범벅이 된 채로 비틀거리며 상영관을 겨우 빠져나왔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다. 이 모든 건 어이없게도, 단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빌리(브래드 피트)’는 차를 몰고 가면서 CD 한 장을 플레이어에 집어넣는다. 딸 ‘케이시’가 직접 녹음해서 선물한 것이다. 빌리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아빠에게 인사를 건네는 케이시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녀는 기타를 치면서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중간에 잠시 멈춰 서 있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애써봤지만 혼자서는 해내지 못해
이유조차 모르겠어
난 그저 한순간에 길을 잃어버린
작은 소녀일 뿐”
바로 이 장면. 난 그저 한순간에 길을 잃어버린 작은 소녀일 뿐.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이 노래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졌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 거의 통곡할 정도로 북받치는 감정을 어떻게 멈출 수가 없었다.
당시 <머니볼>이 어느 정도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상영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꽤 여러 번, <머니볼> 상영관의 출구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손목시계의 분침을 살피며 살금살금 입구로 들어가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쳐다봤을 때마다 브래드 피트는 매번 카세트테이프를 틀었고, 소녀의 노래가 매번 흘러나왔고, 그 모든 장면을 나는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속수무책으로, 입술을 깨물고 손가락 끝을 손톱으로 짓눌러 봐도 정말 매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스물네 살. 20대 중반 어쩌면 20대 초반. 어떻게 소개하든 결코 ‘소녀’로 불릴 수는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열네 살 아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아직 단단히 여물지 못한, 너무나도 나약한, 그런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나는 매번 눈물을 훔치고, 어둠 속을 걸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관객의 눈을 피해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자국을 지웠다.
안녕하십니까. 2시 영화 맞으십니까. 머니볼 3관입니다. ‘솔’톤의 인사말, 실수와 눈물, 그 사이사이에 놓인 몇 줌의 팝콘으로 요약될 수 있는 나의 아르바이트는 몇 달만에 끝이 났다. 길 잃은 작은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른을 넘긴 후의 어느 날, 김혜리 기자님의 에세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어크로스, 2017)를 읽고서야 나는 겨우 깨닫게 되었다. ‘난 그저 한순간에 길을 잃어버린 작은 소녀일 뿐’ 그 뒤에 아직 남은 가사가 있었음을.
몇 년 만에 다시 <머니볼>을 보았다. 내가 알던 그 방식대로 ‘트레이드’가 이루어졌고, 빌리의 방식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결말에 다다르자 빌리가 CD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내가 기억하는 그 노래가 흘러나올 차례였다. 눈물은 여전했지만 이번엔 마지막까지 자막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워. 하지만 나는 그걸 드러내지 않아.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시간을 거슬러 예전의 나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나는 상영관 안에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물을 참으려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나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한걸음 뒤에서 나타난 따뜻한 손 하나가 나의 오른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울지 마. 어둠 속에선 누구나 두려워.
하지만 때로는, 두려움을 감춰야 할 필요도 있는 거야.
왜 예전엔 몰랐을까. 그때의 내가 눈물을 흘리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스크린을 또렷하게 응시했었더라면,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조건반사처럼 끓어오르는 서러움을 가라앉히고 가사를 끝까지 살필 수 있었더라면.
왜 예전엔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시종일관 우적우적 해바라기씨를 씹어대던 빌리의 모습을, 진지한 회의 중에도 누가 앞에 있건 말건 입속의 잔해를 거침없이 퉤 뱉어버리던 그의 태도를, 긴장을 풀고 상대를 기선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과격하게 무언가를 씹어대야 했던 그의 사정을. 온몸으로 관객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빌리라는 인물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잘되든 못되든 밀어붙여볼래.”라고 말하는 그가 속으로는 어떤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는지 내가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았더라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여 나는,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껏 보아온, 때로는 무심히 지나쳐 온, 영화 속 찰나의 순간과 음식 장면들이 미로 같은 나의 삶에 힌트가 되어주리라 믿으며 쓰기로 했다. 여전히 가끔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삶은 두려우니까. 그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고 더듬더듬 무언가에 의지하면서 어둠 속을 헤쳐 나가야만 하니까.
언젠가 이 행적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기를 꿈꾼다.
당신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홀로 계단을 내려가야 할 때, 발을 헛딛을까 덜컥 겁이 날 때, 그 어둠 속에서 문을 열어야 할 때, 때로 문이 생각처럼 쉽게 열리지 않아 힘에 부칠 때, 안전하게 어둠을 통과하고 굳게 닫혀있는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당신의 걸음에 맞춰 한 발 앞에서 도와주는, 당신 곁에 머무는 희미한 유도등 같은, 그런 책이 되어주길.
팝콘보다 더 고소하게
팝콘보다 더 달콤하게
우리의 삶을 위로해 줄
영화 속 음식들로부터 키워낸 작은 불빛 하나를, 두려움을 감추고, 당신에게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