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총량의 법칙
'운'을 믿으시나요?
마치 '신을 믿나요?'와 비슷한 질문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운'의 작용을 믿습니다. 실리콘 벨리의 대단한 부자는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거부'가 된 것처럼 말하거나, 미디어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들도 '운'이 좋았던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다고. '운'은 누군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의 필수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도 없습니다.
'운'은 '내가 노력해서 어찌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처럼, 내 마음이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의 경우에도 우리는 '노력'을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습니다. 곧 한계에 부딪힌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때 내 통제를 벗어나지만, 내가 받아 드는 결과에 영향을 주는 무한하고 복잡한 요인들을 통칭해서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운이 좋기를 바라지는 또 않습니다.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운의 절대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 칠 때마다 자주 하던 생각이 있습니다. 모의고사에서 찍어서 맞추지는 말자. 찍어 맞춘다면 실제 수능에서 그러자. 내게 운이 있다면, 지금은 그 운이 모습을 드러날 때가 아니다. 운이 있다면 아끼고 아껴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 쓰자. 이런 생각 말입니다.
시험운은 다 없어도 좋으니, 수능 때만큼은 모든 운을 끌어모아 찍는 문제마다 맞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기도 했고요. 그리고 운이라는 것은 제가 나이들도 몸이 쇠약해질 때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잔병치레는 해도 되니, 중한 병은 피하자. 그때 운이 좀 작용해 줬으면 하고 말이죠.
그러니 평소에도 함부로 '운'을 남발하면 안 됩니다. 작은 선물 받으려고 응모한다거나, 공으로 뭘 바란다거나 하지 않아야 하죠. 저는 그렇게 운을 아낍니다. 모든 사람과 친해지지는 않더라도, 죽어라 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가장 통제하기 힘든 게 대개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제가 가진 모든 운, 아직 쓰지 않고 남겨둔 운이 있다면, 아내와 아들과 딸에게 나누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며칠 전 딸을 재우는데, "아빠, 나는 16살이나 그런 나이가 계속이면 좋겠어."라고 유치원생 딸이 말하더군요. 늙어서 할머니 되면 죽으니까 라고 덧붙이며. 얼른 자라서 언니가 되고 싶지만, 할머니는 되기 싫은 이쁜 딸에게 제 운을 마구 나누어 주고 싶을 것 같습니다.
운 좋지 않은 날은 그러니 '평범한 날' 혹은 '당연한 날'입니다. 늘 그저 그런 날이면 좋겠습니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Anastasia Dulgi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