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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츠루 Jun 11. 2021

시험문제 출제하는 저의 방법을 공유합니다.

선생님, 시험 문제 어떻게 내시나요?


오늘의 예상 독자는 동료 선생님입니다. 교사에게 가장 고된 달은 3월이지만, 시험에 느끼는 출제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합니다. 오늘 옆에 있는 저 경력 선생님이 ‘차라리 시험을 치던 때가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데, 공감이 되더군요. 어디선가 모두들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계실 겁니다. 저는 지금 막 출제를 끝낸 김에, 어떻게 출제를 하는지 써두려고 합니다. 꼭 동료 교사가 아니더라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도 도움이 약간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릴 때 많이 들어본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시험문제 내는 선생님처럼 생각해라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 자료를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굉장히 뛰어난 학습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런 학습자는 드물죠. 



출제의 어려움


학교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데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오류 없는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과서 진도를 생각하면 문제의 출제 범위가 너무 좁습니다. 그마저도 이미 다양한 기출문제가 나온 덕분에 그걸 피해 문제를 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사교육기관에서는 해당 학교의 기출문제를 수집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예상 문제도 만들어서 풀이합니다.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과서 본문 정도는 외울 정도로 공부합니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점검만 한다면, 더 좋은 점수의 학생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대학 입시를 위해서 줄세우기를 해야 하니,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문제를 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진도 파악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진도 파악입니다. 학급별로 진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선 가장 진도가 느린 학급을 기준으로 시험 범위를 정합니다. 시험 범위를 정하고 나면 학생들에게 공지하기 전에, 다시 한번 모든 학급의 진도를 파악합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사용하거나 올해처럼 온오프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꼼꼼하게 진도를 기록해 둬야 합니다. 진도에 해당하는 자료는 모두 모아서 출력합니다. (하나의 교재만 사용한다면 이런 불편함은 없겠지만, 저는 직접 학습지도 여러 장을 만드는 편이라 챙길 게 많습니다.) 이때, 되도록이면 제가 수업을 준비하며 필기한 자료를 기준으로 합니다. 수업을 하고 지나가면, 어디에 강조를 뒀는 지 빠르게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수업을 위해 메모해둔 것을 보면 쉽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범위를 공지하고 나면, 학급 반장이나 부반장을 다 불러서 안내된 시험 범위에 대한 수업이 모두 끝났는지 다시 확인해보도록 합니다. 이는 제가 기록한 것에 혹시나 실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행사가 학교 사정으로 수업 시간이 줄어들어 한 시간 동안 해야 할 분량을 하지 못하고서도 한 시간 수업 분량을 한 것으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 사항 확인


저는 빨간색 펜이나 형광펜을 준비해서, 중요한 사항에 진도파악하면서 출력한 자료에 표시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출제한다라는 원칙으로 접근합니다. 변별을 위한 난도 높은 문제를 내더라도, 너무 지엽적인 것에서 출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의 개수가 출제해야 하는 문제의 개수보다 많아야 합니다. 몇 번을 다시 보면서 출제해야 하는 문항보다 더 많은 아이템을 표시합니다.


이때 아이템이라 하면, 제가 가르치는 영어과목의 경우 단어, 숙어, 어법이 됩니다. 자료에는 없지만, 제가 필기해두고 수업 중에 로 설명한 부분도 확인합니다. 자료에 써주지는 않았지만, 판서해준 부분이나 말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을 반드시 출제하려고 합니다. 수업에 집중한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 구상


문제 구상은 이제 본격적인 출제 작업입니다. 객관식 문항과 서술형 문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객> 혹은 <서> 식으로 표시를 하면서 출제를 합니다. 객관식의 경우, 하나의 지문에서 문제를 내는 게 아니라, 공통된 어법 영역이 있다면, 여러 지문에서 문장을 발췌하여 문항을 만들기도 합니다.

문제 구상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물을 지 정해야 합니다.  


단어나 표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글의 내용이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가?

이러한 단어나 표현, 어법을 쓸 수 있는가?


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어려움이 있는 데, 이미 수업시간에 충분히 다룬 지문에 대해서 내용과 관련된 문항만 만들면 문제가 너무 쉬워진다는 겁니다. 쉽다 어렵다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어교과가 내용을 기억해야 하는 교과가 아닌데도, 기본적으로 시험 범위를 배운 지문에 한정하게 되어 영어교과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A라는 지문을 통해, 여러개의 단어와 표현, 수동태 사용방법에 대해서 배웠다면, 다른 지문에 사용된 수동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학습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로지 배운 지문에서만 출제를 하려고 하면, 암기 싸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학습한 지문이라고 하더라도, 글의 논리에 대해 묻거나, 글에 사용된 표현을 고쳐서 문항을 출제하거나 합니다. 그리고 빈칸 넣기나 내용 이해를 묻는 문항의 경우, 보기를 영어로 작성하여 학생들이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를 보려고 합니다.


문제 구상의 과정이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우선 생각해둔 아이템을 모두 문제로 만들기가 대개 어렵기 때문에, 구상하는 과정에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야 합니다. 문제 구상이 얼추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면서 구상한 문제에 <객 1>, <객 2>, <서 1> 식으로 번호를 붙여서 최종 출제를 준비합니다.



문제 만들기


문항 구성이 끝났으면 문제 만들기는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끝납니다. 저는 오랜 동안 학교에서 문제를 출제하지 못했습니다. 교무실은 학생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업이 없는 시간의 경우에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출제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상에 시간을 많이 쓰면서, 보기까지 메모를 해두는 편입니다.


수업에 사용한 원자료는 모두 워드파일 형태로 구글 드라이브에 한 폴더에 모아둡니다. 일단 폰트와 폰트 크기를 정하고, 되도록이면 표(table) 사용 없이 문제를 만듭니다. 편집은 대개 같은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가 번갈아 가면서 하기 때문에, 제가 출제를 할 때에는 거의 스타일 없이 출제합니다.


문항 출제를 다 하고 나면, 출력해서 다시 봅니다. 최종 편집이 끝나고 다시 보겠지만, 출제 후에 우선 중복 출제된 영역이나 아이템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출제가 모두 끝나고 나면


일단 출제를 해서 평가계에 내고 나면 문제를 다시 보기 싫어지더군요. 하지만, 아직 인쇄의 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시간을 내서 두 번 정도는 더 봐야 합니다. 일단 출제 후에 며칠은 문제를 꺼내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쇄에 들어가는 날이 되면 다시 출력해서 풀어봅니다. 다른 사람이 출제한 문제를 살펴본다라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데,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이때는 같은 과 동료 교사의 협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반드시 오타나 오류를 발견하겠다는 마음으로 맹렬한 기세로 문제를 다시 봐야 합니다. 시험 당일 발견되면, 그것은 어떤 작은 실수든 악몽이 될 수가 있습니다.



구상의 과정에 대해서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한 문제를 구상하고, 그걸 바로 문제로 만들어서 한글에 작성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구상하고, 한글 파일에 덧붙이고.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경우 작업의 속도가 너무나 더뎠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구상하는 과정과 문제를 한글에서 만드는 작업은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입니다. 구상의 경우,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한글에서 문항을 만들려면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지문을 복사해서 붙이고, 타이핑하는 과정 등이 필요합니다. 두 과정을 오가면서 낭비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큽니다.


구상 후 바로 문제 만들기의 과정은 일종의 ‘멀티태스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씩 진행되는 것 같지만, 어떠한 단계도 끝나지 않아서 구상하는 과정도, 출제하는 과정도 더욱 길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구상을 충분히 하고(게다가 펜과 종이로만 구상할 수 있기 때문에, 출제하다가 문항이 노출될 위험이 적습니다.) 한글 작업을 시작하면, 대개 한글에서의 출제 과정은 집중한 경우 3시간도 안 걸려서 끝납니다.



어떻게 하시나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시나요? 더 좋은 팁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학생들에게) 어떻게 선생님처럼 생각할 것인가?


출제자처럼 생각하는 것은 말만 쉽지 전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할 때,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내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보는 것은 추천할 만합니다.  

시험 범위를 기록한다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 자료는 모두 한 곳에 모은다. (없는 것은 복사하거나 새로 출력)

중요하다고 들었던 내용에 표시

객관식이나 서술형으로 낸다면,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잠시 생각 : 이건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잠깐 쳐다보고, 외워서 다른 종이에 한번 써보는 정도도 충분합니다. 대신 하나를 한 번에 외운다고 생각하지 않고, 빠른 시간에 시험 범위 전체를 훑는 과정을 여러 번 우선 반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덧.


출제를 하려고 하면, 학생 때 시험공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꼭 책상 정리를 하게 되고,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책들이 모두 재미있어 보입니다. 교과서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출제하는 교사의 마음도 사실 시험공부하는 학생과 비슷합니다. 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건강한 마음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직구를 찔러 대듯 군더더기 없이 출제하거나 공부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우리 다 잘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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