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꽤 열심히 전학공(전문적 학습 공동체)을 운영해 왔다. 그 업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열정을 가지고 진행해 왔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올해 나는 이 학교가 처음이라 이전까지의 진행 사항은 이야기로 들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학년 단위 중심으로 전학공을 운영한다고 했다.
우리 학년부의 경우,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고, 학년 내 모임을 진행하고 필요한 돈을 사용해야 한다. 첫번째 모임은 책으로 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전학공의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 공동체라는 믿음 혹은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 따라서 서로 원해서 만드는 그룹이 아니라면, 진행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성장을 도우려면,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믿고 의지하는 마음은 누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면 좋은데, 일단 그 단계는 지나버렸다. 학년부 중심의 모임이라는 기조는 정해졌으니.
“이제 이야기 나눠봅시다.” 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이야기의 소재로 가장 좋은 것은 책이다. 책은 읽는 사람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그걸 나누는 가운데,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게 된다.
선생님들에게 한 달전에 책 주문을 받았다. 이제껏 혹은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을 골라달라. 다른 선생님에게 권한다고 생각하고 골라 달라. 는 게 나의 요구였다. 그리고 한 권씩의 책을 골랐고, 지역 서점에서 구입했다.
일종의 책광고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추천한 책을 왜 추천했는 지 이야기 했다. 내가 추천한 책이라 다른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면 내 기분도 좋을테니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모두 마음 속으로 읽고 싶은 책을 찜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선택한 책이라, 마치 선물을 나누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책 소개가 끝나고, 나는 포스트잇 띠지를 준비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총 9명. 한 사람당 띠지 2개. 요령은 이렇다.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골라서, 거기에 띠지를 붙인다.
띠지가 하나만 붙은 책은, 그 띠지의 주인이 책을 가지고 간다. (이렇게 세 권이 먼저 주인을 찾았다.)
띠지가 두개 이상 붙은 책은, 우선 양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양보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을 가져간 사람은 다른 책에 붙인 띠지는 모두 떼어낸다.
그렇게 띠지를 떼어 냈는데, 띠지가 하나만 남아 있으면 그 띠지의 주인이 책을 가져 간다.
이런 과정 끝에 우리는 모두 책을 한 권씩 가질 수 있었다. 선생님 중 한 분이 시집을 출판한 등단시인이라, 그 분의 시집은 특별 선물로 한 권 구입했다. 나는 뽑기를 해서 한 분에게 드릴까 했지만, 한 선생님이 자신이 먼저 읽고 돌리겠다고 했다. 그 생각도 좋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모두 서로에게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이제 우리는 딱 그 정도 서로를 더 알게 되지 않았을까.
다음번 모임은 어떻게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