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면, 가끔 나보다 더 일찍 와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이유로 먼저 와 있는 것일까?
대개는 교실 불은 끈 채로, 에어컨은 켠 채로 휴대폰을 하고 있다. 아니면, 대범(?)하게 교실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낮이 되어도 교실은 밝아지지 않는다. 햇볕이 싫은 건지, 어두운 게 익숙한 건지, 대개 운동장 쪽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고, 전등으로만 불을 밝히고 있다. 전등을 모두 켜면 밝기는 한데, 해가 비추는 바깥만큼 밝고 환하지 않다. 에어컨이 풍기는 그 약간 습한 느낌, 사람의 몸을 파고드는 그 차가움에 학생들은 비실 비실 졸기 시작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햇볕이 났다. 꿉꿉한 이불이 있으면 볕에 널면 좋을 텐데, 나는 잠시 긴 장마와 잦은 비에 눅눅한 나를 말리러 나간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먹는 간식은 모두 선생님들 돈으로 산다. 따로 교사들의 ‘복지’를 위해 책정되는 돈은 없다. 봉지커피까지 회비를 내어 사 먹는다. 다른 직장도 다 그런가? 모르니까 모른다. 아무튼 1층 교무실 휴게 공간에 봉지 커피가 떨어졌다고 해서 잠시 사러 학교 앞 농협마트로 간다.
가을 가을
나는 친목회 총무다. 이 학교에서는 ‘친화회’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교직원 전체가 회원이다. 매월 회비를 모으고, 각종 상조에 부조하고, 그 돈으로 간식도 산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전체 회식을 하거나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사도장학금’이라고 내가 거쳐온 고등학교들은 모두 사도장학금을 조성했다. 매월 선생님들이 내는 돈을 모으고, 학생들은 선정해서 장학금으로 준다. 대학교도 이렇게 하나? 아무튼 회장, 고문, 가끔은 감사, 남자 총무, 여자 총무 이렇게 임원이 구성된다. 임원이라지만, 총무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고, 회식 자리를 예약하는 일이다. 그저 또 다른 일. 커피가 떨어졌데서 커피 사러 나가는 일. 어떤 분은 모카골드, 어떤 분은 화이트 골드, 어떤 분은 드립 커피, 어떤 분은 허브차. 취향도 다양하고, 사야 할 것도 여러 가지다.
그렇게 커피를 사면서 잠시 학교를 벗어난다. 240포 들이 커피 두 통을 사서, 급식소에 하나 드리고, 1층 교무실 휴게공간에도 둔다. 240 봉지라고 해도, 하루 20개씩 먹으면 2주도 걸리지 않는다. 더 큰 포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7, 8교시에는 영어 말하기 대회가 있었다. 고1 학생들은 수상경력이 대입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모든 고등학교 행사들이 어쩔 수 없이, ‘대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본선 발표가 있어서 심사를 했다.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해온 발표를 듣고 있자니 정말 즐거웠다. 저 학생들과 무엇이든 더 재미있을 일을 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고를 쓰느라 고민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느라 사진을 이곳저곳에 붙였을 학생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저걸 준비하느라 아마도 학원을 마치고 나서 새벽까지 더 깨어 있어야 했으리라. 학생들의 발표를 다 듣고, 심사위원 대표(?)로 나도 한마디 했다. 학생들 영어를 듣고 있으니, 나도 갑자기 영어를 쓰고 싶어졌다. 엄마가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꼭 끼어들어 자기도 연습하려던 아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재미있어 보이면, 따라 하고 싶고 같이 하고 싶어 진다. 기대보다 훨씬 잘해줬다. 누가 상을 받던지 모두가 다 잘했다.라고 말해줬다.
남강과 가을
돌아오는 하늘도, 강도, 나무도, 풀도 모두 가을이다.
여름도 좋았고, 가을도 좋다.
오늘도 좋고, 이 순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