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츠루 Dec 07. 2021

딸의 취학통지서와 나의 국민학교

딸의 취학 통지서


내년이면 딸이 초등학교에 간다. 오빠를 보고 혹은 오빠의 말을 듣고, 벌써 공부 많이 하는 건 싫다고 말하는 딸이지만, 돌아서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욕심쟁이다. 책가방 살 생각에 설레고, 자기 방을 만들고 침대도 들일 생각에 설렌다.

아이들의 성장은 늘 놀랍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의 변화는 대단하다. 유치원 때까지의 삶의 반경은 가족+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이다. 하지만, 유치원 친구들과의 유대는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는 그 모습이 분명 다르다. 유치원생들은 솔직하기는 하지만, 자기 마음이 어떤 지 잘 모르고, 서로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서로 배려할지 잘 모른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람 사귐의 기술은 고도로 발달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기도 하겠지.

https://www.gov.kr/portal/service/serviceInfo/174100000020
  취학통지서 발급 | 정부서비스 | 정부24  접속량이 많아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잠시 후 다시 접속해주세요  www.gov.kr


취학통지서 쯤은 정부 24에서 출력이 가능하다. 다양한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가능하니 품 들일 일이 적다. 모두 책상에 앉은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는 한데, 계속 편리만 추구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튼 취학통지서를 받아왔고, 나는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입학 하던 때를 생각한다. 손수건을 곱게 접어서 가슴에 매달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사진을 볼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미끄럼틀 앞에서 동생과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막연한 비장미가 느껴진다랄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으면서도, 무언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리에 휩쓸리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건 인간의 중요한 본능 아닐까. 사회적 인간에게 늘 닥치는 과제는 바로 ‘관계’다. 국민학교라는 넓은 공간으로 가면서 나와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제법 혼란스러웠으리라.

기억 속의 나는 늘 내 또래만 바라 보았고, 세상은 내가 보는 시선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혼란한 세상을 이해하려고 혼자 궁리하는 사이, 나는 내가 이해하는 세상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내 자아는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몸이라는 틀에 갇힌 적이 없이 늘 자라났다. 마치 허물을 찢고 나오듯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막연하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그때의 그 ‘잘한다’는 건
- 그저 친구들과 잘 지내고
- 밥 잘 먹고, 잘 뛰어 놀고
정도겠다. 초등학교 입학생에게 기대되는 바는 딱 그 정도 아닐까.
물론 부모는 아이가 하나하나 해낼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또 도와주고 응원하기는 한다.

초등학생이 된 딸의 모습은 어떨까? 새치머리를 자르고 있는 나에게 와서 아빠는 백 살까지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 이제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되리라 확신하고 기도한다. 이래저래 기도할 게 많은 날들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불편한 목과 마음이 출근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