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독해의 넓은 의미를 영어 수업 시간에 발견하기 어렵다. 독해란 영어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글을 읽고, 문맥을 이해하고, 나의 삶에 비추어 배우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영어수업의 독해란 어떤 형태로든 결국 평가와 대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수업 방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대입에 도움이 되느냐"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었어도 이런 변명은 바뀌지 않았다. 절대평가가 되었다고 1등급이 수두룩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건 난이도 조절에 성공한 것일까,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낮아진 것일까. 아니면 절대평가 전환이 무색하게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위 창의적인 수업을 하다가는 시험 진도에 허덕일 수가 있다. 시험 진도를 확보하려면 재미는 포기한다. 이때의 재미란 fun이 아니다. 배우는 기쁨을 포함한 그 재미다. 배움의 기쁨이 없이 재미만 좇아도 망한 수업이 되지만, 배움이 기쁨이 없는 수업이 여전히 수업인지는 의심스럽다.
다 귀찮으면 학생들 탓을 하면 된다. 학급 내에서 수준차이가 심하다. 학업성취가 이전 세대의 학생들에 비해서 너무 낮다.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다. 영포자가 있다. 휴대폰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을 뜨지 못한다. 등등. 그런 변명은 교사 한 명보다 더 수명이 길지 않을까. 다들 두들겨 패가며 수업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데, 두들겨 팰 때 말을 듣고 고분고분 앉아 있던 때를 손쉽게 미화한다.
수업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힘이 빠지고 수업이 싫어진다. 수업 준비를 하느라 했는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힘이 빠진다. 내 노력을 몰라주는 학생들을 보면 또 힘이 빠진다. ... 그럼 어디에서 힘을 낼 수 있을까.
오늘은 정말로 오랜만에 수업 방식을 좀 바꿔 봤다. 분량 고민하지 않고, 배움의 기쁨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다. 월요일 수업은 참 안 풀리다가도, 어쨌든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 같은 수업도 요령이 더 생긴다.
영어를 공부하려면, 일단 소리내어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단어의 뜻이 궁금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들을 끌어들여, 받아 든 지문에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오늘 한 번의 수업으로 여기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 늘 마스크 사이로 사탕이나 비타민을 집어넣고, 반쯤은 엎드린 자세로 병든 사자 같은 눈을 하고 있던 학생 몇몇이 아주 신나 하며 활동에 참여하는 걸 보니, 아주 즐거웠다.
내신 1등급을 선별하고, 장차 치르게 될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수업을 준비한다지만, 수업의 목적이 그러하면 이미 한참 빗나간 것이긴 하다. 그래도 거기에 별스럽게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공고한 원칙이기도 하고, 오래 거기에 길들여져서 그렇기도 하다.
독해란 문자를 통해 세상을 읽고, 또 나를 이해하는 활동이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당연히 읽어야 하겠지만, 어떤 것에서든 내가 관심 있어야 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영어 독해란, 이때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는 점이다. 이미 갖고 있는 영어 성취라는 게 수업 활동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수업을 조직하느냐는 학생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러니 다시, 나에게 필요한 건 수업을 준비할 시간. 수업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멍 때릴 시간. 고등학교 영어교사에 독해수업이란, 결국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영어에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읽기라는 행위로 끌어들이는 활동이다. 더 많이 준비할수록, 더 열정을 가질수록 더 가능해지는 일 아닐까.
그러니, 저에게 시간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