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도움이 되는 글을 볼 수 있는 서울비님의 블로그. 대개 생산성에 대해 잘 다루시는데, 오늘은 교무실의 배타적인 문화에 대한 글이 있다.
https://seoulrain.substack.com/p/014-?s=r
<적정한 삶>이란 책을 읽고 정리한 생각인 것 같은데, 아래 부분에는 공감하게 된다.
"사람은 안 바뀐다"를 습관적으로 공유하는 조직이 처하게 되는 위기 상황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무례하고, 불성실하며, 음흉하기까지 하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특정한 누구누구와는 앞으로 더 이상 협력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하지요.
학교 사회는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기반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하는 학생들이 그렇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의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 규율과 규칙으로 통제하고자 한다면, 학교가 아니라 경찰이 더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학생들을 대하는 게 늘 쉽고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믿지 않으면 학교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Photo by [Ehimetalor Akhere Unuabona](https://unsplash.com/@theeastlondonphotographer?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 on [Unsplash](https://unsplash.com/s/photos/betrayal?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
학생에게는 사뭇 허용적 이더라도, 교사 서로 간에도 허용적인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의 일이란 수업을 제외하면(물론 수업의 경우에도 상당한 협조와 협력이 필요하지만), 모두 협조하고 협력해야 하는 일들이다. 혼자서 계획하고 수행하고 마감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학교 메신저 내용의 대부분은 부탁하는 글이다. 연수를 들어달라, 무언가를 제출해달라, 학생들에게 안내해 달라..
협조와 협력의 기반은 무엇일까? 학교의 비전?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 동료간의 인간애? 하나의 이유나 기반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기대지 않으면, 학교라는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협조하지 않고 내 몸이 편하려는 상태와 어쩔 수 없이 협조해야 할 것 같은 상태 사이의 밀고 당김. 무엇이든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고, 무엇이든 해보려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 안에서의 내적갈등 만큼이나 한 학교 안에서의 상호간 갈등은 빈번하다.
그래도 마치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루자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의 발로가 아닐 수가 있다. 묻지 않고 이야기 들어보기 전에는 판단이 불가하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러이러하면 당연히 저러저러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그 사람 왜 그런지 모르겠다 식으로 여론을 만들면, 진실은 자라목처럼 숨어버리고, 소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배제만 또렷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