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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츠루 Sep 06. 2020

침팬지, 언어의 비밀을 밝히다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루켈 밀슨 


역시나는 역시나다. 책 읽기는 쉬우나 책에 대해 쓰는 일은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읽은 내용이 한 줄로 줄을 서듯 한 타래의 아이디어로 정리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그럼에도 이 책이 너무 좋았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해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구입한 책이 초판 1쇄다. 2017년 9월 15일 초판) 책의 가격은 25,000원. 본문은 475페이지 정도다.(두껍지만, 웬만한 소설보다 더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떠오르는 대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써보겠다. 


1. 따뜻한 가족의 연대기다. 

뜻하지 않게 침팬지를 연구하게 된 가난한 대학원생 로저 파우츠, 그가 만난 워쇼라는 침팬지. 그 둘의 만남으로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서로 가족으로 지낸다. 아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와중에 맛보는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다. 침팬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읽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게 된다. 


2. 인간 언어 탄생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  

영어교육을 전공했으니,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이 주제에 더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해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로저 파우츠는 자신이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를 통해서 언어의 발생에 대한 합리적이고 인상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로저 파우츠는 침팬지에게 미국 수화를 가르치고, 자폐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미국 수화를 가르친다. 그 과정에 그들의 언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3. 동물의 존엄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의 이야기이기는 하나, 로저 파우츠 가족은 워쇼와 침팬지 가족들을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 간다. 워쇼를 위한 최선이 무엇 일지에 대해 고민한다. 인간과 함께 자라면서 스스로를 인간으로 자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침팬지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짓이라며 제인 구달은 로저 박사에게 조언한다. 로저 박사는 (대개의 경우) 너무 가혹한 환경에 내팽겨 치진 워쇼가 아닌 침팬지들도 관찰하게 된다. 워쇼라는 침팬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침팬지라는 종에 대해 더욱 이해가 깊어진다. 그들은 의사소통하며, 서로를 돌보고, 고통을 느끼고, 고통 때문에 죽기도 한다. 그런 동물을 '피실험체'로 사용하거나, 작은 우리에 가두고 '관리'해도 되는가? 

나는 '비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결국 동물이 느끼는 아픔이나 감정, 고통에 공감한다면, 동물을 밀사 하고 먹어치우는 데 어느 정도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간성은 '공감'이다. 그 공감이 오로지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자연을 착취하는 것으로만 귀결되지 않을까. 나의 편리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나를 제외한 모두 개체에 대한 공감의 가능성은 우리를 더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까. 


4. 인간의 유일함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수화를 통해 인간 언어의 발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로저는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의 끝없는 반론과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그들의 논지는 하나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인간의 언어만이 언어다. 인간만이 유일한 이성을 가졌다. 인간이 유일하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침팬지가 보이는 '언어 능력'을 갖은 수단으로 부정한다. 비과학의 태도를 엿보면 과학자의 '신념'이라는 게 자기 이론만을 향한 것이라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유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긴 진화의 한 타레에 속한 지구 상 다양한 생명체 중 하나다. 가장 방대한 문명을 구축하고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는 다른 종과는 다른 유일한 종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내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에게 라면 추천하기도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언어에 관심이 있거나, 진화에 관심이 있거나(역시나 다윈은 여러 차례 언급된다. 천재 다윈), 동물의 권리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제인 구달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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