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유행 때 깨달은 점 세가지
이전 글에 이야기했듯, 2020년 봄 코로나 1차 대유행 때 재택근무 모드로 지냈다. 두 달 동안 극도의 생산성 저하를 경험했고, 회고를 통해 재택 모드에서 내 생산성 시스템이 망가지는 이유를 몇가지 찾았다.
신체라는 플랫폼이 무너지면 일상의 이벤트를 안정적으로 올려두기 어렵다.
두가지 측면인데 첫째는 리듬이고 둘째는 과체중이다. 코로나 이전(이리 말하니 너무 슬프다) 일상적 삶은 흐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오피스로 이동한 후 앉아서 일을 한다. 때 되면 밥 먹고, 차를 마시고, 회의를 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저녁 무렵 오피스를 나온 후,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는다. 밤되면 씻고 쉬고 노닥거리다가 하루를 마친다.
이 평범한 시나리오에서도 보이듯, 하루 중 일과 삶의 각 시퀀스는 신체적 기동을 통해 매듭과 전환이 이뤄지게 마련이다. 동작과 이동 같은 움직임을 통해 근무 모드, 식사 모드, 대화 모드 등 국면이 바뀐다는 신호를 받는데 익숙하다. 그런데 재택근무는 머무는 공간의 범위가 좁아지므로 움직임이 뚜렷하지 않게 된다. 태스크를 향해 움직인다기보다 한자리에서 태스크와 맥락이 바뀌다보니 모드의 매듭과 전환이 밋밋해진다. 그리고 맥락이 소멸한다. 하루라는 시간이 매일 통짜로 주어지고 움직임이 나누지 못하니, 의지로 가상화하여 구분해야 한다. (대개는 구분과 전환이 어려워 인터넷 서핑 모드, 놀기 모드에 빠지면 그냥 한나절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리고 과체중.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 나는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무리 부지런히 물뜨고 엉덩이 가볍게 해봤자 소모하는 칼로리란 새발의 피다.
뻔하지만 그만큼 명백한 비만 공식이다.
체중의 증분 = 섭취한 칼로리 - (운동량 + 기초대사량)
단시간에 변하지 않는 기초대사량을 논외로 하면, 움직임이 소멸하니 운동량이 극히 줄어든다. 이유 없이 독하게 굶지 않는 이상, 먹는건 약간 줄여봤자 체중은 매일 불어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집에서라면 세끼 다 챙겨 먹고 간식까지 먹기 좋은 환경이다. 그로인해 체중이 불고 십수년전에 아팠던 허리가 나빠지고 다시 또 움직이기 싫어지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코로나와 무관하게, 몇년 전 쯤 생산성이 정체에 빠진 때가 있었다.
매일 바쁘고 알차게 사는 편인데, 타고나길 성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서 하루를 잘 못 살면 바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내가 장기에 걸쳐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는걸 알게 되었다. 그 전 2~3년간 창의적이거나 위대한 일, 도전적인 일이 거의 없다는걸 발견했다. 매우 바쁘고 아주 잘 관리된 삶을 사는 와중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헛되게 알찬, 목적없는 생산성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고 정착시킨지 대략 2년 됐다. 이 시스템은 기회되면 따로 소개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글과 관련 있는 하나의 개념만 소개한다.
내가 'relaxed flow'라고 부르는 특정 상태다. 기본적으로는 멍때림에 가까운데 어떤 잡념이 사라지면서 칙센트미하이의 플로(flow) 상태가 된다. 플로에 진입할 때, 일의 몰입에서 비롯되지 않고 느긋한(relaxation) 상태에서 출발하는 게 핵심이다. 이 상태에 오면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아이디어나 일들, 신나고 재미난 일, 설레는 일 들이 때론 폭풍처럼 혹는 시냇물처럼 머릿속을 흐른다. 이미지로 이야기하면 내 일상을 한발짝 떨어져 관조하게 되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 때 떠오른 생각을 적어두고, 실행은 미리 셋업해둔 '알찬' 일상 처리 시스템에 맡겨둔다. 결과로 삶은 재미나면서도 알차게 되고, 이게 사용 중인 '창의 생산성' 시스템의 정수다.
그런데, 1차 대유행의 코로나 재택으로 이게 깨졌던거다.
내겐, 저 relaxed flow 상태를 만들기 가장 좋은 환경이 좌석버스다. 자가용이나 택시, 지하철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침에 좌석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매우 소중한 부가가치의 시간이었다. 재택을 하면서 이 시간이 사라졌고 일상을 관조하는 그 시간도 없어졌다. 내게 마법을 부려주던 창의생산성 시스템의 시동 스위치가 꺼진 셈이었다.
그걸 몇 주 지나도록 몰랐다. 사람들 만나는 일이 없고 외부에서의 자극이 사라지니 그저 바닷 물속에 침잠해 있듯 고요한 무자극의 상태였기 때문일게다.
월 4권 페이스로 독서한지 십년이 넘었다. 1차 대유행 때, 집에 오래 머물면 최소 책이라도 더 읽을 줄 알았다. 정반대였다.
이유는 루틴이 무너진 탓. 숨쉬듯 자연스러워 몰랐을 뿐, 프리코로나 땐 '독서 타임'이 있었다. 주말되면 내가 좋아하는 리클라이너에 기대 앉아 여러 시간 책 읽는게 한주를 마감하고 정리하는 루틴이었다. 재택모드가 되자 일과 생활이 서서히 뭉쳐지면서,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모호해져 버렸다. 주중에 게으름을 피우면 주말에 일해야 하고, 주말에 잘 쉬지 못하면 주중에 어정쩡, 꾸역꾸역 저단 기어로 달리는, 그 엉망진창 곤죽의 시간이란.
재택으로 무너진 루틴이 한두개일까만, 독서를 세번째 깨달음으로 언급한 이유가 있다. 이 참에 깨달았지만 독서도 내 '생산시스템'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그 전에도 알고 있었던 점은 독서가 내겐 스승이었다. 일과 삶의 많은 실마리를 책에서 얻었다.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해서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건 얼추 배웠다. 그 뒤엔 내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삶에서 풀어야할 문제는 원래 아카데미아의 소관이 아니라 응용의 세계니까, 뾰족한 문제의 적확한 답을 딱 짚어 가르쳐주는데가 있을리 없다. 협상이든 기획이든 투자나 신사업 구상이든 수없이 당면한 난제가 있을때마다, 고민이 깊어질 때 쯤 신기하게 그 때 읽던 책에 답이 있었다. 단순한 우연은 아니고, 지혜를 갈구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진리의 일환이다.
아무튼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체적인 활동이 동시에 줄고, 집중해서 진행할 일들도 줄어드니 꼭 해야할 아웃풋도 따라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일과 삶에서 풀어야할 문제도 줄어들고 답도 필요없는 상태가 되니, 독서도 보상이 적게 느껴졌을테다. 설상가상으로, 사람 만날 일이 사라되니 지적 대화의 자리마저도 증발해버렸다.
그렇게 독서가 줄었고, 내 창의 생산 시스템도 망가져버렸다.
글이 길어졌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번 2차 대유행에 적용한 부분은 다음글에 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