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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Sep 18. 2021

아몬드



책을 좋아하지만, 편식이 심한편입니다. 예컨대, 소설은 잘 안 읽게 됩니다.

그래서, 한달에 한권은 손이 안 나가는 책을 읽기로 정해둔 바 있습니다.

교보에서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추천 진열대에서 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몬드라는 제목과, 아몬드를 닮은 무심한 얼굴.

표지 그림에 마음이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손원평, 2017


'설마 아니겠지'했는데, 제 상상과 맞아 놀랐습니다.

편도체가 딱 아몬드 만합니다. 이 조그만 아몬드 하나가 고장나면 감정을 잃는다고 알려져 있지요. 책은 편도체가 고장난 어느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 불능증이 생기면 감정을 못 느낍니다. 나머지 지능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감정의 흐름이 막히면 갑자기 멍청하게 보여집니다. 감정은 기억의 압축이자, 상황의 요약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계의 경보이자 친교의 시그널이 됩니다.


이성이 조금 발달한 후 감정은 부차적이고 본능적 바닥 정서라 생각되었지만 현재 뇌과학의 발견은 반대입니다. 합리와 이성은 감정의 시종이지요. 감정은 빠른계산을 담당하고 이성은 느린 설명을 할 뿐입니다.


결국 위험을 보고 도망치는 능력이나, 다른 이의 맥락을 못알아 듣는 것만 못합니다. 이 딱 두가지 능력의 부족이 주인공 소년에겐 장애처럼 어려움으로 작용합니다. 아이의 엄마는 온갖 생활속 맥락을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직관으로 이해를 못하니, 말과 몸짓의 진정한 뜻과 적절한 반응을 알려주고, 암기시키고 시험까지 봅니다.


사실 엄마도, 우리 자신도, 감정을 느끼기만 하지 설명할 정도로 잘 알진 못하는데 말입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누가 맛없는 음식을 줄땐 어떻게 해야해?'

이 간단한 질문도 답은 간단치 않습니다.


실천적으로 사용가능한 요소는 세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침묵,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실은 감정이 없어도 없음을 숨길 수 있는 마법의 배합같네요.


와중에 드라마처럼 몇가지 일들이 생기고 꼬여가면서 주인공은 세월을 견디고 성장하고 감정의 느낌을 조금씩 이해합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사건을 관통하면서 새로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감정이 있다는게 능력일까?

나서야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껴서 못나섭니다. 오히려 감정 없는 주인공이 '해야해서' 나섭니다. 이성과 합리, 윤리 같은 이름으로 오래도록 인류가 함양하려 노력한 가치는, 감정이 순식간에 무력화할수도 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Inuit Points ★★★★☆

소설임에도 따뜻한 임상보고서를 읽듯 세세한 구석이 잘 전달되는 책입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는듯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저자 손원평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김살 없이 자란 덕에 작가로선 깜냥이 부족하다 여기며 괴로와 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집안의 무조건적 지지와 사랑이야말로 드물고 귀한거란걸 나중에야 알았다.

궁금증이 일어 검색해보니 아버지가 손학규네요. 손학규의 기여는 손원평이란 작가를 구김살 없이 길러낸거 아닐까 잠깐 생각했습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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