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제목 참 아쉽다.
'나체 조각상, 뚱뚱한 검투사 그리고 전투 코끼리(Naked statue, fat gladiator, and war elephant)'처럼 흥미 진진한 제목을 이렇게 밋밋하게 바꿀 수도 있군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 비하면, 거꾸로 읽는 부분도 없는데 말이죠.
부제: 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the ancient Greeks & Romans
Garrett Ryan, 2021
번역제목이 출판사의 비즈니스니 그러려니 친다면, 책 자체는 엄청 재미납니다.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고대의 이야기를 요즘 옆나라 여행기처럼 생생하고 활기차게 적었습니다. 한번도 궁금해본적은 없지만, 첫머리 읽으면 과연 어땠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부제가 FAQ지만요.
예컨대 그리스 로마에선 술을 어떻게 마셨나, 숙취는 어찌 해결했는지 같은 이야기죠. 또는 그 때 공중화장실은 있었나 일반 집안의 화장실은 어땠나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숙취해소법은 꿀과 양배추, 아몬드를 먹었음. 공중화장실은 크고 잘 되어 있어, 곁에서 일보다 만난 사람이 저녁 초대를 하기도 했다고 함. 집안 화장실은 하수구의 역류방지장치가 없던 때라 변기가 하수구와 연결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오강임. 하수구 메탄이 올라오면 폭발함)
책의 제목에 들어가는 3대 요소를 잠깐 보죠. 나체조각상보단 고대 그리스로마인의 미적 감각이 더 재미납니다. 흔히 영화에서 보는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몸매는 신체를 억압하고 정신을 짓누른다고 하급으로 취급했다고 하네요. 적당히 탄탄한 몸매가 아름다운 몸입니다. 심지어 검투사는 콩수프와 보리죽을 엄청 먹어 '근육돼지' 정도의 몸매로 추정됩니다. 이유는 피하지방이 적당히 있어야 칼을 맞아도 장기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투코끼리도 재미납니다. 처음 전쟁 씬에 등장했을때는 핵폭탄급 위력으로 생각 되었지만, 코끼리들이 잘 놀라는 특성도 있고, 파훼법이 나온 후 무력화 되었다고 합니다. 잘 조련된 부대는 느슨한 대형으로 코끼리를 지나가게 한후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이후로 로마는 코끼리를 전쟁에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자잘한 내용이 제겐 더 와 닿았습니다. 에컨대, 그 때 경찰이라는 공식기능이 아예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밤에 나다니면 강도 당하기 일쑤고 무장 경호원을 대동해야 밤마실 나갈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다만 경찰보다 더 안전에 중요한 소방대가 있었고, 이들이 화재 예방을 위해 돌아 다니다 눈에 띄면 두들겨 패긴 했다고 해요. 그리고 또 법정은 있어 피해자가 범인을 직접 잡아가면 재판은 해줬나 봅니다.
여행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닷길이 더 빠르긴 하지만 해적이 들끓고, 1년에 배가 뜰 수 있는 날도 반정도 수준이라 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육로를 택해야 했지요. 이 때 도둑보다 더 무서운건 숙소라고 해요. 위생 자체도 살벌했고, 언제든 주인이 강도로 돌변하거나 음식에 독을 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행이 잦은 부자들은 아예 길목에 집을 여러개 사서 거점으로 활용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여행을 하고 견문을 넓히고 그 거친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하니 인간이란 참 대단합니다.
Inuit Points ★★★☆☆
읽고나면 딱히 뭐가 남거나 감동스러운건 없지만, 읽는 내내 재미나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유튜브형 책이랄까요. 시간 순삭하는 흡인력이 장점입니다.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몇가지 편리해진 점은 있지만 사람 사는건 다 똑같다는 겁니다. 물론, 안전이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되고, 인권이 보다 천부적으로 인정되는 게 나아졌지만, 정신적 영적으로 지금 별반 나아졌나 싶기도 해요. 아무튼 건강한 시간 때우기 독서로 추천할 만 합니다. 별 셋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