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일본에 사업 제휴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때입니다. 어디랑 제휴를 해야 하는지 묻자, 일본통들이 제일 먼저 꼽는게 도코모와 츠타야 서점이었습니다. 도코모야 익숙한 이름이지만, 저는 그때 츠타야 서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이름이 매우 일본적이고, 전통적인데?
그냥 서점이 아니라, DVD와 CD등 컨텐츠에 강한 회사라고 이야기를 들으니 호기심이 더 생겼더랬습니다.
마스다 무네아키, 2014
오프라인
제 관점에선 오프라인 상점의 생존법을 정립한 사람, 무네아키입니다. 경영 관련해선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일 없어 츠타야에 대해선 단편적인 지식과 막연한 관념 만 갖고 있던 터라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써드 스테이지
별로 와닿지 않는, 전형적인 일본식 네이밍입니다. 상품이 주가 되는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상품이 흔해지면 이제 플랫폼이 주가 되는 세컨드 스테이지라고 규정합니다. 플랫폼마저 흔해지면 고객에게 주는 제안이 중요해지며 그게 써드 스테이지라는 무네아키의 관점입니다.
제안
흔히 서구경영에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라고도 표현하지만, 무네아키의 제안 개념은 더 광폭입니다. 큐레이션에 가깝습니다. 제안의 집요한 지향점은 고객가치입니다. 여기서 무네아키와 츠타야의 강점이 나타납니다.
서점의 재편
통상적으로 잡지, 문학, 경영 등으로 나눠져 있는 기존의 서점은 판매장소입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주말에 뭐할까, 프랑스 관련해선 무슨 책이 있을까, 테마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소요를 맞춰주는 제안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판매장소가 아닌 구입장소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지적자본
매우 쉬운 개념이지만 실행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제안을 구현하는건 현장의 직원이니까요. 따라서 무네아키 경영 철학의 핵심은 사람, 직원, 그들의 지적자본입니다.
MBO와 재분사
그래서 재미난 일화도 있습니다. 자본 시장의 주가 압박으로 고객가치를 충실히 구현하는게 무리다 생각해서 무네아키의 CCC(컬처 컨비 클럽)는 상장주식을 거두어 MBO를 합니다. 그러다 다시 재분사를 하는데 그 이유가 인상 깊습니다. 어느날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이 인사를 하는데 누군지 모르겠더라는겁니다. 즉 사징이 새 직원을 모를 정도 규모라면 직원끼리도 모를것 아닌가. 이러면 지적자본의 축적에 현저한 문제가 있겠다 싶어 분사를 하고 사이즈를 작게 유지합니다.
실행력
전반적으로 저자는 실행력이 대단합니다. 생각하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이고, 신중의 표상 같은 일본의 경영자랑 궤를 달리합니다. 츠타야를 CCC로 만든 일등공신은 다케오 시립도서관이죠.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이 츠타야에 찾아와 약속없이 무네아키를 만나고, 시립 도서관을 츠타야처럼 운영해달라 요청합니다. 그리고 무네아키는 그 자리에서 수락하지요. 시립 도서관을 맡아, 18만권 책을 재분류하고 단장하여 재개장합니다. 인구 5만 도시에서 1년만에 100만 방문객을 달성하면서 CCC, 무네아키, 츠타야의 신화는 만개합니다.
약속과 감사
마지막 부분에 무네아키의 경영철학이 잠깐 나오는데 이것도 재미납니다. 자유와 사랑입니다. 자유는 고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사랑은 동료 간 결속입니다. 자유가 원심이면 사랑은 구심이 되어 평형을 이룹니다. 그 바탕엔 "약속과 감사"가 있고요. 사훈에 가까운 모토인가봅니다.
Inuit Points ★★★☆☆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츠타야는 잠시 들러만 봤지 이면에 어떤 철학이 있을지 다소 막연했는데, 이제 선연해졌습니다. 설계자의 사고프로세스를 엿봤으니까요. 특히 일본 실용서의 허접함과 다른 알짜가 있어 좋았습니다. 책이 얇아도 몇가지 쓸만한 개념만 건지면 하나도 안 아깝죠. 이나모리 가즈오 이후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미덕 하나 더 꼽고 갑니다. 제가 디자인 씽킹에 대해 좋은 책을 찾아 여러권을 읽고도 실망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디자인 씽킹에 명실상부하게 들어맞습니다. 재미났었고, 별 셋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