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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Jul 03. 2022

분열하는 제국

미국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우린 대충 압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상륙.
거친 환경이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중요한 노하우를 많이 얻고 정착에 성공.
감사의 마음으로 추수감사절 생김.
이후 (다른동네) 인디언들을 정복하고 미국 대륙을 장악하는 한편,
본국의 과도한 간섭에 빡이 쳐 보스턴에서 홍차를 갖다 버리고 독립을 쟁취했다.

뭐 이런 이야기죠. 곰곰 생각해보면 군데군데 구멍이 많아서 영 누덕누덕한 서사입니다만.

이게 날조는 아니지만 총체적 진실에선 너무 먼 이야기고, 미국 탄생기 중 지극히 작은 이야기이며, 특정 지역의 서사라는 걸 이제야 처음 알았습니다.

American nations

부제: A history of the 11 rival regional cultures of north america

Collin Woodard, 2011


책의 핵심주장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다.
북미대륙엔 11개의 뚜렷이 다른 민족들이 존재했고,
미국은 그 상호작용으로 생겨났으며
아직도 9개 민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처음엔 '책 팔아 먹으려고 말이 좀 세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따라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게 됩니다. 수긍을 넘어, 지금까지 제가 명시적 암시적으로 궁금했던 미국 역사와 지정학에 관한 무수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컨대,

레드넥은 어디서 생겨난 사람인가. 왜 그리 다른가.

미국 중부에 독일혈통과 문화가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도보다 위도에 따라 문화적 유사성이 많이 보이는건 우연인가.

민주를 숭상한다는 나라에, 왠 귀족주의적 상원인가.

총투표와 무관한 주별 승자독식이 과연 민주적인가.

현대차는 왜 앨러배마에 공장을 세웠을까.

11개 민족

저자의 주장처럼 북미 대륙에 11개의 민족이 있다면 이 모든게 다 이해가 됩니다. 초기 식민지인 양키덤, 뉴네덜란드, 미들랜드, 타이드워터, 딥 사우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만 알아도 현재상의 그림이 잡힙니다.


이 중에서도 양극이 있습니다. 뉴잉글랜드를 근거로 하는 양키덤과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확장한 딥 사우스의 양강입니다. 양키덤이 바로 서두에 제가 말한 미국 건국 서사의 주인공이고 남북전쟁 승리의 중핵이 됩니다. 반면 딥 사우스는 별종입니다. 악랄하기로 유명한 바베이도스 노예농장주들의 자식 중, 상속 받을 건덕지도 없는 차남들이 들어와 만든 식민지입니다. 시작부터 노예인구가 많고 깊은 차별의식으로 인종차별의 베이스캠프가 됩니다. 남북전쟁에서 진 후, 와해된 정치조직을 대신해 민간의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부흥을 꾀한 흔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편견가득한 기득권 지배층의 인종차별을 내재화하고, 창조론을 교과서에 박아야 성이 풀리는 원리주의 기독교가 탄생합니다.


그렇다고 북부의 양키라고 선할까요. 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르치려 들고 참견하는 선민의식이에 쩔어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민족이 재수없다 여겨, 반대편에 서게 만들어 남북의 균형을 초래한 장본인입니다.  결국 지금의 미국을 민주당 vs 공화당으로 이해하기보단 양키덤 대 딥사우스의 대결로 보는게 훨씬 모양이 잘 잡힙니다.  


책 읽으며 제게 가장 재미났던 부분은 주인없는 신대륙에서의 상황을 실감나게 상상하는 과정입니다. 초기 정착민의 강렬한 실존 열망과 사투의 시간들이기도 하지요. 롱아일랜드와 뉴욕이,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사생결단 싸워야 했고, 광야의 인디언보다도 내 본국의 군인과 세금이 더 무섭습니다. 돈도 소용 없어 위스키를 화폐로 써야 하는 오지도 많고, 세금을 내느냐 전쟁을 하느냐, 항복을 하느냐 깨끗이 죽느냐가 선택지입니다. 노예를 기죽이지 않으면 반란으로 내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이 모든 난국 속에서도 어쩌면 종교적 이상향을 이룰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시대였습니다.


이래 복잡한 역사와 감정이 얽히고 섥혀 만들어진게 미국입니다. 남북 전쟁 이전에도 여러번 쪼개질 뻔했고, 지금이라도 어느 한귀퉁이 떨어져 새 나라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Inuit Points ★★★★★

한글 제목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부실함을 넘어 호도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목이 잠재적 판매량을 절반은 날려먹었을듯 합니다. '분열하는' 키워드가 아닙니다. 분열로 시작해서  개로 덩어리졌을 뿐, 분열하고 있진 않습니다.  좋은 내용을, 구역질나는 표지로 가리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본문과 관련도 없는, '트럼프는 분열을 조장한다' 쉬운 서사에 마케팅을 기대어 간다는게  우습습니다.


아 참 이번에 다시 정리를 했지만 nation, state의 차이점이 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11개 민족으로 번역한건 11개 nation입니다. 그리고 지역별로 정치기구가 붙어 50개 주(state)가 되지요. 그리고 원래 state는 국가입니다. USA는 아메리카합중국, 아메리카 국가 연합인거죠. 딱히 쓸모는 없지만 제 호기심을 원없이 채웠습니다. 게걸스럽게 읽었습니다. 별 다섯 꽉 채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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