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습니다.
예전 기준, 늘 그 자리 같고 별 재미 없는 사업을 하던 LG생건이 최근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저와는 크게 관련 없는 업종이라 뭔일이지 싶기만 했지요. 몇년 전부터 차석용, 차석용 소리가 나서 한번 제대로 공부해봐야지 하고 찾아둔 책입니다.
읽고 싶은 리스트에 넣어두고도, LG생건이라는 내용이 연상되지 않는 제목이라 근 2년간 리스트 구석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이게 뭔데 내가 넣어뒀지' 살펴보고 기억이 났습니다. 바로 사서 읽었지요.
홍성태, 2019
저자는 책을 참 잘 씁니다. 함량도 풍부하지만 읽기 좋게 적습니다. 그의 전작 중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라는 책도 좋았는데 이 책도 재미납니다. 제 궁금증이 많이 풀렸습니다.
차석용이 기력 쇠해가는 LG생건을 구하러 대표로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진 설계'입니다. 큰 틀에서 구상입니다. 포트폴리오를 확정하고 고정비를 줄이는 한편 속도감 넘치는 사내문화를 만듭니다.
포트폴리오는 화장품-생활용품-식음료의 삼각 체제를 갖춥니다. 이 중 제일 약한 다리인 식음료를 보강하기 위해 코카콜라를 인수하고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지요. 저 삼각체제의 장점은 두가지 입니다. 공급측면에서는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로 기존 역량의 레버리지 및 시너지가 가능합니다. 수요측면에선 서로 변동성을 상쇄할 수 있지요. 이건 전략의 영역입니다.
한편 고정비를 줄이는건 재무의 영역이고 새로 오는 리더가 흔히 하는 일입니다. 조직 문화를 바꾸는건 이중 가장 어려운 리더십의 영역입니다. 사내문화는 이처럼 전략과 재무를 촘촘히 엮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지요.
그가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신속한 의사결정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부분을 간소화합니다. 결국 얼핏 밋밋해보이는 세가지 중점 추진 사항이 실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힐 때만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책은, 이를 이루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적었습니다. 이 글의 백미는 M&A 팁입니다. 1조 매출 때 부임해서 근 여덟배 키우는건 유기적 성장만으론 어렵습니다. 인수합병 같은 비유기적 방법을 병행해야지요.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인수후 통합이 관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특히 LG생건은 인수전부터 PMI를 염두에 두고 팀을 짠다는게 와닿았습니다.
Inuit Points ★★★☆☆
책이 잘 읽히고 눈여겨 볼 내용도 많습니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차석용비어천가로 변하면서 재미가 없어집니다. 물론 책 쓰느라 근접에서 보다 보니 매력이 잘 보이기도 하고, 또 가까이서 안 좋은 이야기 쓰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겠지요. 하지만 다큐로 시작해서 팬픽으로 바뀌는 느낌이라, 어느 순간부터 독자의 긴장이 풀어집니다.
공정을 기하자면 단 한사람의 힘으로 회사가 잘될 순 없습니다. 큰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요. 잘 된 모든게 차석용의 덕이라면, 최근 1년간 주가가 반토막이 된것도 죄다 차석용 잘못일까요. 결국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오류를 답습하는게 아쉽습니다. 잘 된 집의 잘 된 요소만 끌어다 놓는다고 성공이 재구성되진 않을 뿐더러, 잘 된 요소 자체도 역사와 상황적 맥락 하에서만 의미 있지 말입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