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oulette
몇번이나 읽을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서평 좋은게 거의 없습니다. 남의 시시콜콜한 '라떼 이야기'를 읽는게 시간 낭비란 의견 들입니다. 미국 아마존 쪽 평은 그닥 나쁘지 않아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아, 한가지 더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중국'을 읽으며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중국은 앞면만 보이는 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게 도움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부제: An insiser's story of wealth, power, corruption and wengeance in today's china
Desmond Shum, 2021
책은 제법 흥미진진하게 시작합니다.
중국 최고의 부자이자 내 아내였던 휘트니가 사라졌다.
자기 소유의 불가리 호텔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녀가 도와줬던 수많은 정관계 인물들은 애써 모른척 하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시콜콜한 가지를 치고 나면, 책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공산 혁명전 엘리트이자 적폐가문의 자손인 저자 데스몬드 슘은, 우여곡절 끝에 일찍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칩니다. 중국문화보다 서양 문화가 익숙한 그가, 중국이 개방하는 무렵 홍콩에서 서방과 중국 합작의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이어 베이징까지 진출하고 아내가 될 휘트니 단을 만납니다. 둘은 데이트만이 아닌 SWOT 분석을 통해 결합을 결정하고 공생관계가 됩니다. 아내는 중국 정부와의 꽌시를 담당하고, 남편은 서양 등 외부와 교류 및 사업의 실행을 담당합니다. 마침내, 부총리 시절 원자바오의 아내와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고, 수많은 정관계와의 로비를 통해 거부를 이룹니다. 그러고는 정파 간 싸움에 말려 추락하죠. 본인은 꿈을 꾸던 이카루스라고 생각하겠지만, 정확히는 적장을 잡기 위해 쏜 화살에 맞은 말 꼴이 됩니다.
결국 재미난건 중국의 꽌시라는 성격입니다.
이게 책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공산당 내부에서 권력의지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가치입니다. 이를 위해 파벌과 파벌이 대립합니다. 이기면 다음 단계로 가고, 지면 단체로 숙청을 당합니다. 그래서, 충성과 신뢰의 네트워크가 핵심 가치가 됩니다. 이런 내부투쟁의 인프라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법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걸면 걸리고, 놓으면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당의 권력과 권위를 과점하는 그룹이 계속 이기기 쉽지만, 기세와 명분, 빌미의 싸움이 됩니다.
따라서 책에선 은근히 그림자처럼만 드리워져 있지만, 시진핑의 부상이 대하 스토리의 결말입니다. 휘트니-저자 부부도 시진핑이 유명하기 전에 이미 만났고, 지극히 평범해서 꽌시를 굳이 맺을 필요 없겠다 판단했을 정도입니다. 은인자중하지만 기회되면 확실히 자리를 차지하고, 자리 차지하면 확실히 경쟁자를 제끼는 시진핑은 심모원려의 권력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시 쪽에서 보시라이를 치고, 보시라이 쪽은 반격으로 원자바오를 쏘고, 그 유탄은 원자바오의 측근인 저자의 아내가 직격을 맞게 되는거죠.
글 읽으며, 중국 정부의 부패가 체계적이란 점을 배웠습니다. 즉 중국에서의 부패는 도덕이나 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에코 시스템이 돌아가는 축입니다. 돈과 리스크를 몰아두고 피아식별을 합니다. 즉 권력의 세금일 뿐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공산주의란, 아니 공산당이란 하나의 권력체계에 불과할 뿐이란 점입니다. 보편성과 대중성에 아름다운 이상 한 스푼을 얹은 멋진 외양이지만, 심부에는 자연히 독재로 향하는 권위적 체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게 잘 작동하는 동안은 효율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효율적 자원의 배분을 양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패로 빠져 나가는 돈도 작지 않지만, 그건 콩고물이고, 인프라나 전략적 목표를 수행함에 있어 우선순위가 로컬하고 사적으로 매겨지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중국'에서 왜 중국이 멀쩡한 허울 이면에 깊이 곪은 농촌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그 해결이 난망인 이유를 사례 중심으로 생생히 알게 된 점이 좋았습니다.
Inuit Points ★★★☆☆
자전적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자 자체도 부정부패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임에도, 허물은 전 아내 휘트니에게 전가하고, 슬쩍 청결한 체 하는 것도 구린 냄새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체제 안쪽에서 보기엔 너무나도 낯 뜨거운 이야기, 적나라함 자체라 슘 씨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러시아였다면 분명 차 한잔 먹였을텐데 말입니다.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지만, 짧은 일대기 여기저기 묻어있는 편린들로 인해 더 강렬하게 내부의 작동원리를 알게 되어 전 배운점이 많습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