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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Sep 17. 2022

슬라브, 막이 오른다

무하를 좋아합니다.

간간히 봤을때 단순히 그림체가 이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시 화단의 문법에선 파격이었고 지금 봐도 예쁜 그림인건 맞습니다. 재주는 있으나 지독하고 지루한 무명 시절을 견디다 우연히 상업 포스터 작가로 유명해진 무하. 아르누보의 선구자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대중들이 그림을 감상하기 좋도록 포스터 그림을 계속 그렸던 무하입니다.


그가 파리 생활을 접고 귀국한 이후 여생을 몰두한게 '슬라브 서사시' 연작입니다.  

대체 뭐지? 체코가 슬라브족이었구나? 그럼 러시아랑 한 핏줄로 느끼고 있는건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하가 여생을 슬라브 민족의 이야기를 남기려 애썼고 그 덕에 슬라브 사람들이 눈물흘리며 정체성을 내면화 했다는것만 읽었습니다. 어쩌면, 남미 보다도 더 안개속에 있는 나라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 소련, 지금의 러시아와 동유럽. 슬라브 민족의 나라들 말입니다.  

김주연, 2022


무하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궁금증이 일던 차에 흔치 않은 책이 눈에 띄어 읽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만족했습니다.


우선 슬라브 나라들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슬라브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중심이고, 슬라브의 발원지 같은 곳입니다. 슬라브 전설에서 루스, 레스, 체흐 삼형제가 각방향으로 갔다는게 실제 그들 조상의 이동을 기억하는것일테지요. 곰과 호랑이의 단군신화마냥요.


서슬라브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입니다. 슬로바키아도 슬라브 족에서 나온 이름 같습니다. 이중 체코와 폴란드는 서유럽에 붙어 있어 유럽의 중력권에 있고 러시아로부터 종종 철퇴를 맞곤 합니다. 프라하의 봄이 대표적이지요. 무하를 비롯해 카프카, 쿤데라,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 유명한 이들이 프라하의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슬라브. 유고 슬라비아가 슬라브란 뜻인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유고 연방이 해체되고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원심력이 발동하여 하나씩 떨어져 갑니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 코소보, 북 마케도니아. 이번에 가장 크게 배운 곳이 남슬라브입니다. 세르비아-보스니아 내전은 매번 봐도 누가 누군지 헛갈렸습니다. 유고의 심장이 세르비아고 세르비아가 떨어져나가는 보스니아에 못된짓을 하는 방향성이란걸 이해했습니다. 같은 소련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했던 유고 연방이 티토를 중심으로 인간미 있는 사회주의, 제3의 길을 꿈꾸던 아름다운 이상이 있었다는점도 이참에 알게 되었습니다. 보스니아의 중심 사라예보에는 4대 종교의 사원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든지, 무슬림이 다수라 평화와 공생을 추구하다 여기저기 얻어터졌고, 또 그 이면엔 오스만의 침략 시 이슬람을 받아들여 혼자 잘 나갔던 형제국가에 대한 미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크로아티아는 카톨릭이라 세르비아의 정교와는 첨예하게 날 세운다는, 외려 유사해보일 수록 더 선명하게 다투는 역사도 깨닫게 됩니다.


간결히 적다보니 이렇게 정리했지, 역사 책이 아닙니다. 문화의 책입니다. 드라마터그라는 저자의 특성 상, 연극, 영화, 음악, 문학 등 예술의 입장으로 슬라브의 문화적 토대를 설명합니다. 문화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 보충되는 내용입니다. 덕분에 건조한 먼나라들 역사가 아니라 펄떡거리는 문화가 보입니다. 아픔을 내면화하거나 승화하거나 기억하기 위한 노래, 이야기, 몸짓들. 부수적으로 좋은 작품과 음악가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Inuit Points ★★★★☆

꽤 잘 쓴 책입니다. 제목이 명실상부합니다. 슬라브 족과 문화를 입체적으로, 시간의 지평을 넓혀 적었습니다. 이렇게 한방에 슬라브 지역에 대한 인식의 안개가 걷히는 경험이란 행운 같습니다. 직접 현지를 다니며 적은 노고와,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한 탓일겝니다. 저자 혼자 역량으로 캐리한 글입니다. 재미났고 유익했습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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