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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Sep 11. 2022

1년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마지막 몰입'을 읽다가 흥미로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자가 전미 기억력 챔피언십 대회를 취재하러 갔고,
취재중 만난 사람들로부터 방법을 배워
다음 해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다.

이 무슨 웹툰같은 스토리가 실화라니. 궁금해서 읽어볼까 리뷰를 봤습니다. 서평이 엉망입니다. 

안 봐야지 생각을 접었다가 다시 또 궁금해져 해외로 눈을 돌려보니 아마존 리뷰는 국내랑 다르게 긍정적입니다. 


읽어보자. 아니면 속아주지 뭐. 

Moonwalking with Einstein

Joshua Foer, 2011 


재미납니다. 그리고 왜 평이 안좋은지도 알것 같습니다. 한글 제목이 대놓고 낚시는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낚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책으로 기억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기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교범은 아닙니다.

책은 세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고대의 기억술(art of memory, ars memorativa)입니다.

둘째,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규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저자 자신의 기억력 대회 준비과정입니다. 


저자가 기억력 대회를 준비하면서, 고대의 기억술과 그를 현대에 되살린 기억력 마스터에게 기법을 배우고, 현대 과학이 밝혀낸 기억의 실체를 병행하여 취재하면서 기억력 훈련의 효과를 배가합니다. 대회 관련한 미시적 전술 내용이 살짝 나오고요. 


따라서 이 책으로 기억술을 배우고 싶었다면 아쉬울겁니다. 궁금증이 해갈도 안되면서 쓸데없는 소리가 많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저처럼 기억과 뇌의 작용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매우매우 재미나고 유용합니다. 기억술은 뇌의 작용을 극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니까요. 


우선 이 책의 독특성인 기억술부터 이야기하지요. 기억술은 책으로 많이 나오지 않아 이 글 정도면 꽤 상세히 밝힌 편입니다. 고대의 기억술은 흔히 말하는 기억의 궁전(memory palace)에서 비롯됩니다. 붕괴사고 후 유일한 생존자이자 기억술 마스터인 시인 시모니데스가 연회에 있었던 전원의 위치를 기억해서 유명해졌다는 기억법입니다. 기억 궁전의 핵심은 외워야할 사항을 잊혀지지 않는 기괴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변환하여 상상속의 장소에 두는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든 기억을 되살fl고 싶을땐 그 궁전을 걸으며 무엇이 어디에 놓여져 있나 살펴보면 됩니다. 본 이미지를 원래의 내용으로 변환하면 상기됩니다. 카드를 외우건, 원주율 몇만자리를 외우건 원리는 같습니다. 특히 고대의 웅변가들은 이러한 기억술로 원고 내용을 암송했고 그 흔적이 topic(topos=장소)이나, in the first place(첫째) 같은 표현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영어 원제가 'moonwalking with Einstein'인 것도, 저자가 결승에서 스페이드 4, 하트 킹, 다이아몬드 3을 외울때 PAO(person-action-object) 방식으로, '내가 아인슈타인과 문워킹 하는 모습'으로 카드 석장을 코딩하는데서 따온 제목입니다. 책 제목으로도 잊혀지지 않죠. 


재미나게도 책에 토니 부잔이 등장합니다. 마인드맵으로 유명한 그 사람입니다. 부잔은 기억술을 발견하여 현대에 되살린 사람이고, 기억력 대회를 만들어 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마인드 맵은 기억술의 일부를 비주얼하게 표현한거지요. 


그럼 이러한 기억술이 작동하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뇌는 이미지와 장소로 기억하는게 최상의 성능을 내기 때문입니다. 원시 조상의 과제는 그러했을것 같습니다. 어디에 뭣이 있는지를 기억하면 살고 아니면 죽는.


여기에 더해, 기억은 환경을 학습해서 더 나은 행동을 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가장 기억력이 좋은 사람, 우영우 변호사 같은 자폐스펙트럼의 유명인과 가장 기억력이 나쁜사람,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데 기능적 손상이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기억의 용도에 대해 탐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안데르스 에릭센, 1만시간 법칙의 박사님에게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실험재료로 제공하는 대신, 1년간 훈련에서 막힐 때마다 도움을 받죠.  


결국 저자는 심오한 깨달음에 닿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는 시대에 기억은 기억 자체로는 기능이 덜 필요해보이지만, 실은 기억이 학습의 기제고 창의성의 원천이란 점이지요. 그래서 굳이 기억술 같은 방법을 꼭 배워야하는건 아니지만, 기억 자체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 뇌 기능이란 점을 밝힙니다. 뇌가 손상된 환자를 보면, 결국 자아를 형성하는것도 기억이고, 관계도 기억이니 말입니다. 


Inuit Points ★★

기대도 없었다가 평소 궁금증을 많이 풀었습니다. 특히 1만 시간 법칙의 계획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이 나온 이유를 알게 된 점도 좋습니다. 즉 능력 향상의 한계점(OK plateau)을 돌파하는건 기능의 해체와 학습의 망각후 재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진정한 실력 향상이 그 지점에서 이뤄진다는 점이지요. 


아, 그리고 이 책은 책으로서 품질에 문제가 있을 정도로 오역이 심합니다. 중요한 문단을 통째로 생략하거나, 아예 반대로 해석하고, 전문용어를 일상용어랑 혼돈하여 해석해 둘 정도로 엉망입니다. 읽다 뜻이 안통해 원문 보면 매우 명확히 씌여 있었지요. 그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아무튼 전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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