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니..
이 수수께끼 같이 신비한 제목, 어찌 내용을 안 읽어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흔치않은 공연 비평이니 말이죠.
목정원, 2021
책은 목정원 '산문'이라 되어 있습니다. 수필이라고 하기엔 심화된 공연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고, 비평이라기엔 신변적 연성의 서술이 많습니다. 산문이 내용을 적절히 규정합니다.
열 편의 글모음입니다. 미학을 전공한 저자가 파리에서 지내던 시절 위주로 글이 펼쳐집니다. 공연을 보기 전후의 이야기, 공연이 주는 심상, 비평의 자세 등에 대해 광폭의 독백을 합니다. '관객이 직업'인 비평을 하기로 하고, 마음의 집을 정하려던 중 '목신의 오후'를 보고 춤을 집으로 삼습니다. 무용을 잘 비평하려 춤을 배우기도 하지요.
공연과 테러, 공연과 마이너리티, 화해하지 못하던 오페라에 입문하게 해준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인연. 느껴지기론 파리 시절이 저자에게 약간의 치유와 피정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곳에서 좀 더 풍성하고 실험적인 다양한 공연을 통해 저자의 비평적 지평은 넓고 풍성해집니다.
결국 저자의 비평론이 깊게 와 닿았습니다.
의도와 편견을 지운채, 객석에 앉기.
살아 있는 모든 모순앞에 감각을 열어 젖히기.
그러다 한장면, 한문장, 한 몸짓에 기어코 걸려 넘어지기.
그렇게 건드려지기.
건드려진 가슴을 꼭 안고 나와, 그 지점부터 써내려가기.
Inuit Points ★★★☆☆
책은 술술 읽히게 흥미진진하지도, 덮고 싶도록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농부가 모 심듯 한땀 한땀 벼리고 벼린 언어를 이어갑니다. 문장이 단정해 아껴서 핥듯 읽고, 이해가 모자랄까 속도를 늦춰야 하는 글입니다. 글맛 좋은 작가는 더러 보고, 내용이 지적인 작가도 종종 봅니다만, 지적인 내용을 이렇게 스타일리쉬하게 쓰는 작가는 또 누가 있었을까 잘 안 떠오릅니다. 멋부리기 위한 말재주가 아니라, 스며든 심상을 정확히, 아름답게 전하려 수도없이 쓰고 지워 쓴 문장은 정말 일품입니다.
아, 제목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프랑스어로 쓴 논문을 어떤 원로에게 보내면서 쓴 편지 중 일부입니다.
나의 모국어가 이쪽이 아니니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일 수도 있겠다.
그의 다음 글이 벌써 갈증납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