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하고 내려놓기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무릇 시간에 따라 변해갑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길어도 1세기 안에 생명의 한 사이클을 완주하지요.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시간은 많은 걸 주고 또 앗아갑니다. 세월이 지나며 젊음의 생기를 잃는 대신 그에 걸맞은 지혜를 얻지요.
변화를 달갑게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몸은 전에 없이 피로하고, 한번 찐 살은 좀처럼 빠질 생각을 않습니다. 운동을 해도 잠깐뿐이지요. 밤을 새도 끄떡없던 몸은 이제 조금만 과로해도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회식 다음날의 컨디션도 예전같지 않지요. 이같은 신체의 노화는 불가피한 나이듦의 과정입니다.
사실 늙는 건 몸만이 아니지요. 생각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갑니다. 빛나는 열정과 미래를 향한 기대로 가득했던 정신에 '현실감각'과 '무사안일'이 끼어듭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현실감각은 현실을 사는데 필요한 선을 지키는 법과 대외적인 처신을 터득한 것이고, 무사안일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본능의 소산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판단은 물론 각자의 몫입니다.
변화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학창시절 새학기마다 반도 번호도 담임도 바뀌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 변화가 마냥 신나는 건 아니었을 겁니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쳐본 적이 있지는 않나요? 이전과 달라진 상황은 변수를 동반하고, 그 예측불가능성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지요. 나이듦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짊어져야 할 것들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거나,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익숙해지는 바로 그런 순간 말입니다. 생일을 축하받는 기쁨보다 각종 기념일들을 챙겨야 할 부담이 크다면 이제 더이상 어리다고 할 수는 없지요. 몸도 마음도 역할도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해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론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개인마다 아주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나이듦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즐기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전과는 달라진 지금에 아쉬워하지 않고 그 불가능의 자리를 여유로 채우지요. 느려진 걸음만큼 주변의 상황을 더 폭넓게 바라보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계절의 변화가 공간 곳곳에 스며듭니다. 보도블럭 위의 작은 풀과 들꽃이 피어나고 스러지는 게 보입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노인이 눈에 밟히기도 하지요. 슬며시 다가가 도울 건 없는지 살핍니다. 그렇게 눈앞의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놓쳐버린 것들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가령 보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타인의 선의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작은 몸짓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름다운 나이듦에 관한 여러분만의 기준이 있나요? 물론 기준은 무척 다양하겠지만, '오드리 헵번'을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겁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은 외면에 묻어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러하지요. 물론 이것이 단지 날씬한 몸매나 탱탱한 피부를 가졌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미소에서 묻어나는 자애로움, 숨길 수 없는 품위,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진솔한 태도가 한데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지요. 시대의 아이콘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영혼으로서 그녀는 아름다운 나이듦에 관한 엄청난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게 될 동지로서, 저역시 썩 괜찮게 나이들기 위해 수용과 내려놓음을 배우고 있지요.
조용히 자리에 앉습니다.
가만히 호흡을 지켜봅니다.
들-숨...날-숨...들-숨...날-숨.....
숨이 인중을 스치며 들고 나는 걸 느낍니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숨을 조금 더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세요.
호흡이 조금 더 길어지고, 깊어집니다.
불현듯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떠오른 생각을 비판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세요.
생각에 이어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지요.
그 역시 괜찮습니다.
떠오른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끓어오르던 생각과 감정이 지켜보는 순간 서서히 흩어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아차리세요.
다시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호흡이 깊어집니다.
몸이 이완되고, 서서히 평화가 깃듭니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