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넘어 공감하기

상냥함으로 다가서는 법

by 바나

배우는 입장에서 이제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셨나요?

기성세대로서 후배 세대와 원만히 지내고 계신지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세대를 아울러 공감하는 법을 고민해볼 때입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꼰대'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런 행동을 하면 꼰대, 저런 말을 하면 꼰대라고 비꼬지요. 선임들은 후임의 비위를 조금만 거슬러도 꼰대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지나친 간섭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담은 조언조차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라는 것이지요.



의도가 왜곡되고 선의가 부정당할 때,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낍니다. 어느 순간 남을 돕거나 조언을 하는데 소극적이 되고 행동하는 걸 망설이게 되지요. 엄격한 자기검열 끝에 어떤 조언이나 간섭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개인주의가 자리잡지요. 더불어 개인주의의 탈을 쓴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됩니다.



사실 세대 갈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어린 것들이 문제라는 식의 글이 적혀있는 걸 보면 고대에도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의 잔소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게 분명합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그 양상이 다변화되고 다각화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요. 단순히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만이 아니라 양성, 계층, 지역갈등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불만을 가중시킵니다.



경쟁적이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습니다. 이전에 비해 정을 주고 마음을 나누는 깊은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공과 사를 구분하여 직장에서는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미덕인 양 여겨지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 자체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가능하면 타인과 엮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요.



물론 일련의 변화를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는 없습니다. 관계맺음의 지평이 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 하루의 대부분을 타인과 보내는 이상, 지금의 급진적인 변화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유대감이 사라진 자리에 고독과 불신이 자리잡아 알게 모르게 우리의 내면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지요.



관계를 맺는 게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든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생각의 차이로 인한 마찰이나 사소한 오해에서 빚어지는 갈등 같은 걸 겪노라면 관계 자체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요. '건어물남, 건어물녀'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직장에서의 유능함과 별개로 퇴근 후나 주말에는 오로지 집에서 뒹굴거리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많이 있지요.



삶의 방식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추세가 쭉 이어진다면 인간은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섬처럼 외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이와 성별, 지역에 따라 나뉜 채 혐오와 반목을 일삼고,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끼며 자신만의 동굴에 파묻히길 원하는 시대에 내면의 벽을 허물고 편견 없이 서로를 포용하는 일은 요원한 것처럼 보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꿉니다.



홀로 시간을 보내다 흥미로운 영상을 보거나 간만에 해본 요리가 뜻밖에 무척 맛있을 때,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지지요. 직장에서의 일로 머리 끝까지 스트레스가 차오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타인과 '함께'하고픈 욕망을 느낍니다. 그 욕망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지요. 복잡한 관계에 신물이 날 때조차 타인의 인정을 염원하는 자신을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사실 인정욕 자체가 관계에 대한 본능적 갈망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나이를 넘고 성별을 넘어 뭇사람의 호감을 사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는 날카로운 지성과 타인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아량을 갖춘 팔방미인들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특별한 인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저부터도 그러하지요.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공감을 이끌어내고 두루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사실 모든 의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위 여하에 상관없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단순한 태도가 담고 있는 힘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타인을 비난하려 할 때, 그 말이 진정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고서라도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결단력도 필요하지요.



우리는 언제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때론 너무나 명백해서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다만 아는 것을 실천하는 저력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지요. 누군가에게 상냥한 말을 내뱉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겸연적게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번 이런 태도가 자리잡으면 큰 노력없이도 자연스레 배려하게 되고, 날선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게 되려 불편해지지요.



상냥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불신과 반목이 커질 수록 배려와 이해의 미덕은 더욱 빛을 발하지요. 저는 한 사람의 걸출한 영웅보다 평범한 개개인의 선량함이 어려운 시대에 돌파구가 되리라 믿습니다. 결국 우리 각자가 가진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야말로 모든 문제의 '끝과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용한 장소에 자리잡습니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릅니다.

처음에는 호흡이 다소 거칠 수 있습니다.

호흡에 너무 의식하지 말고 들고나는 숨을 조용히 지켜보세요.

들-숨...날-숨...들-숨...날-숨...

서서히 호흡이 고요해집니다.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불쑥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저 지켜보기를 선택하세요.



일어나는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면 생각은 서서히 힘을 잃고 스러집니다.

생각이 멈춘 자리를 바라봅니다.

그 빈 공간을 의식하며 호흡을 이어갑니다.

더욱 고요해집니다.

빈 공간이 점차 커져갑니다.

두려움 없이 매순간에 자신을 맡기세요.

가슴이 열리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깊은 고요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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