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직시하기

두려움과 공생하는 법

by 바나

깨어 있는 매 순간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계신가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떨며 밤잠을 설친 적은 없으신지요?

그렇다면 이제, 내면에 잠재한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 실체를 깊이 들여다볼 때입니다.




두려움은 가장 흔하면서도 다루기 까다로운 감정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 숨어서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지요.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곧 알게 됩니다. 인간을 추동하는 감정의 대부분이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두려움을 뿌리 뽑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두려움은 학습되기 이전에 본능에 속한 것처럼 보입니다. 문명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이전, 두려움은 원시 사회에서 인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감각이 극도로 발달했던 원시 사회에서 인류는 직감적으로 불쾌감이 느껴지는 장소나 음식을 피했겠지요. 이런 직관적인 구분이 위험 요소를 걸러내는 일종의 거름망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의 감각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인간의 감정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분화되고 복잡해졌지요. 사회가 고도로 문명화되면서 선악의 구분은 단순히 위협을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것을 구별하고 규정짓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이나 대상을 경멸하는 태도를 내면화했지요.



두려움이라는 본능 자체에 반기를 들고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을 철저히 배척하는 습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닙니다. 중세 유럽에서 성행한 '마녀사냥'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이질적인 존재를 볼 때 느끼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혐오하며 사람들은 죄없고 힘없는 여성들을 제거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마녀사냥은 폐쇄적인 중세 사회가 빚어낸 일종의 시대적 광기였지만, 두려움이 얼마나 쉽게 인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인가요? 학교에 가거나 출근할 생각에 기분 나쁜 긴장 속에 깨어나지는 않았는지요? 온전한 쉼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필사적으로 살다가 문득 허탈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며 살아야 하는지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 최선을 다해 매일을 살아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을 때, 내면에 도사린 두려움의 실체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오늘날 만연한 두려움은 과거 인류가 느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바로 '생존'에 관한 것이지요. 경쟁에서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매 순간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모되는 신체적, 정신적 고갈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려움을 완전히 뿌리 뽑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본성 깊숙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특히 두려움은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므로 생존해 있는 한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지요. 다만 감정이 올라올 때 깊이 심호흡하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왔습니다. 누구나 변하는 감정에 일희일비하며 에너지를 소모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런 상황에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감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려움에서 비롯된 깊은 우울이나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는 있겠지요.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천천히 내면으로 돌립니다.

호흡에 집중합니다.

들-숨...날-숨...들-숨...날-숨......

호흡을 억지로 조절하려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가쁜 숨이 가라앉고 호흡이 점차 길고 느려집니다.

생각이 떠오르다가 사라지고,

감정이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생각에 휩쓸리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지켜보세요.

그러나 휩쓸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자책할 필요는 없지요.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관성적으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생각이 이어지면, 이어지는 상황을 그저 지켜보세요.

자연스럽게 생각이 지나가고,

마음은 점차 고요해집니다.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들숨과 날숨, 그리고 호흡 사이의 빈 공간을 바라봅니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그저 순간에 존재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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