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행복해지는 법

감사에 인색하지 않기

by 바나

여러분은 감정 표현을 잘하는 편인가요?

쑥스러움에 누군가의 호의를 그냥 지나쳐 버린 적은 없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표현에 조금 더 솔직해지는 법을 고민해 봐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랜선 이모'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귀여운 아기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요. 어른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한 자그마한 존재이면서도, 때로는 어른보다 더 현명한 말을 내뱉는 모습에 감탄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좋고 싫음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지요. 맑은 눈에 비친 세상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새로워 보입니다.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종종 '혼자'라고 느낍니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어쩐지 삶 속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은 고독감에 괴로워하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사실을 쉽게 잊고, 외로움에 빠져드는 걸까요?



어느 날, 저는 하루 동안 타인에게 받았던 친절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습니다. 대문을 나서는데 옆집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요.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관심과 호의를 느낍니다. 출근길에 차를 빼려는데, 다른 차가 멈춰 서며 제 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줍니다.



직장에서 친한 동료가 드립 커피 한 잔을 건넵니다. 작은 빵조각도 받았지요. 아침을 거른 터라 감사히 받아 아침으로 먹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몇몇 동료들과 식당에서 마주칩니다. 자연스레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지요. 그저 사소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일상입니다.



마무리해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방법을 자세히 묻습니다. 몇 번이나 알려주고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관련 자료를 첨부해 메신저로 보내줍니다. 무사히 일과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마트에 들러 과일을 고르는데, 매장 직원이 오늘 새로 들어온 과일을 추천해 줍니다. 신선한 과일을 사들고 집에 들어갑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일 뿐이지만, 일상 곳곳에 스며든 '선의'가 보입니다. 의식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너무 당연해서, 혹은 너무 사소해서 우리는 타인의 친절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실, 내가 베푼 친절 역시 쉽게 잊곤 하지요. 그러고는 세상은 각박한 곳이라 결론짓습니다. 과연, 그것이 타당한 평가일까요?



물론 세상에 선의와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상하기 힘든 악의 역시 존재하지요.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 살인, 폭력 사건을 보도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한쪽에서는 홍수와 산사태로,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과 산불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지요.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사란 언제나 좋고 나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중요한 건 바로 '관점'이지요.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뉴스를 보고, 비슷한 일상을 살아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요. 세상을 온갖 부정부패와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볼 것인지, 사랑과 선의가 살아 숨 쉬는 따뜻한 곳으로 볼 것인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입니다.



각자의 개성에 옳고 그름이 없듯,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간과할 수는 없지요.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의식의 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이 실제 물리적인 삶에 다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요.



기존의 이원론적 인식론에 따르면, 생각과 물질은 상호배타적이어서 생각이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여전히 많은 회의론자들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며 증명 가능하고 실존하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또 다른 흐름에서는 삶의 비밀을 풀어낼 방법론으로서 '비이원론'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학문적인 논의를 길게 이어갈 필요는 없겠지요.



학문은 학문의 영역으로 두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방법으로서 사유를 확장해 보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스스로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하루,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했는지 떠올려 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관점은 오랜 세월에 걸쳐 습관처럼 굳어졌지요. 앞서 언급했듯, 같은 조건에서도 누군가는 행복과 감사를 보고 다른 누군가는 불만과 불행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감사를 느낍니다. 감사가 생활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지요. 문을 잡아주는 이웃이나, 건물을 청소해 주시는 미화원분께 미소 띤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 선의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돌아옵니다. 감사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복을 굳이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 믿던 시대는 지났지요. 이제 사람들은 외적인 성취보다 내면의 풍요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하여 점점 더 많은 이들이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선택했기에 특별해지는 것—이제는 그런 관점을 갖게 된 시대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잠깐의 어색함만 이겨내면, 작은 선의가 가져오는 큰 파장에 곧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해지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그저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치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 봅니다.

가만히 호흡합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지켜보세요.

가빴던 숨이 점차 고요해지는 걸 느낍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던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바라보면,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감정이 휘몰아쳤다 가라앉습니다.

서서히 내면에서 고요함이 떠오르는 걸 느껴보세요.



사는 데 정답이 없듯,

명상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몰입이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온갖 잡생각에 헤맬 때도 있지요.

괜찮습니다.

그런 날엔, 그저 깊이 호흡해 보세요.

호흡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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