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조각 27

유일무이한 곳

by 바나

부모님 댁에 오면 마음이 풀어진다. 평소보다 많이 먹고 많이 잔다.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왔는데 어느새 뒷전이 되어 은은한 죄책감을 안고 늘어진다.


지금도 침대에 엎드려 갈등하고 있다. 밥을 먹고 천천히 글을 쓸까. 그러면 영영 안 쓸 것 같아 몇 줄이라도 더 써 보기로 한다.


여기는 단단하게 세웠던 마음의 장벽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곳이다. 의무감으로부터 가벼워지는 유일한 곳이며, 사랑 속에서 무엇이든 용서되는 무이한 장소이다.


밥을 먹고도 가만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설거지는 어느새 끝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신다. 집안일을 척척 끝내고도 조금도 내색이 없다.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다.


때로는 세상사에 힘겨웠노라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은 곳이다. 온전한 나의 편이 있는 이곳에서, 무장해제된 채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6화생각의 조각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