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다시 알다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이불의 감촉과 냄새가 편안하다. 어제는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여독을 풀었다. 길든 짧든 여행을 다녀오면 하루 정도는 쉬어야 몸이 회복된다. 잘 먹고 잘 쉬고 나니 일상을 시작할 힘이 난다.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나면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여행 자체를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엄마의 나이를 실감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늘 씩씩하고 독립적이어서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늘 도움을 받아왔다. 그러나 집을 떠나니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행동을 제약하는 듯했다. 패키지 여행이야 스스로 계획을 짜고 직접 부딪칠 필요가 없으니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자유여행은 다르다.
매일, 매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어의 차이가 결정의 난이도를 높이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 사람들처럼 어플을 써서 길을 찾거나 글자를 해석하기도 어렵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만큼 언어를 잘하지도 못한다면 꼼짝없이 고립된 느낌이 들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 나이 든 사람이 느낄 무력함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머뭇거림이나 소극적인 태도를 잠시나마 힐난했다. 그런 태도가 엄마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 앞에서 자식들은 얼마나 철없는 막무가내가 되는지….
결과적으로 중년의 후반에 들어선 엄마와 여행을 다녀온 건 참 뜻깊은 일이었다. 좋은 의미에서 세대 차이를 인지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투닥거림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이 편했다. 집과 멀어진 곳에서 비로소 엄마를 다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