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조각 37

엄마를 다시 알다

by 바나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이불의 감촉과 냄새가 편안하다. 제는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여독을 풀었다. 길든 짧든 여행을 다녀오면 하루 정도는 쉬어야 몸이 회복된다. 잘 먹고 잘 쉬고 나니 일상을 시작할 힘이 난다.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나면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여행 자체를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엄마의 나이를 실감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늘 씩씩하고 독립적이어서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늘 도움을 받아왔다. 그러나 집을 떠나니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행동을 제약하는 듯했다. 패키지 여행이야 스스로 계획을 짜고 직접 부딪칠 필요가 없으니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자유여행은 다르다.


매일, 매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어의 차이가 결정의 난이도를 높이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 사람들처럼 어플을 써서 길을 찾거나 글자를 해석하기도 어렵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만큼 언어를 잘하지도 못한다면 꼼짝없이 고립된 느낌이 들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 나이 든 사람이 느낄 무력함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머뭇거림이나 소극적인 태도를 잠시나마 힐난했다. 그런 태도가 엄마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 앞에서 자식들은 얼마나 철없는 막무가내가 되는지….


결과적으로 중년의 후반에 들어선 엄마와 여행을 다녀온 건 참 뜻깊은 일이었다. 좋은 의미에서 세대 차이를 인지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투닥거림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이 편했다. 집과 멀어진 곳에서 비로소 엄마를 다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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