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향기로 기억된다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산책을 했다. 자주 다니던 길이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햇볕이 포근하고 사람들의 복장이 한결 가벼워졌다.
매년 맞이하는 봄이 유독 반갑게 느껴지는 건 올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일까. 1월의 추위가 심상치 않았던 데다 난방비 걱정에 마음 놓고 보일러를 틀지 못해 제법 쌀쌀한 집안 공기를 견뎠던 터였다.
일본에서 이른 봄을 느끼고 돌아와서인지 조만간 피어날 꽃이 더욱 기다려진다. 매화가 피고 나면 이후로는 꽃 세상이다. 순서 없이 피어나는 꽃의 향연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벚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카시아도 무척 기다려진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 주변 나지막한 산에는 아카시아 천지였다. 봄만 되면 동네를 가득 메우는 아카시아의 달콤한 냄새에 취해 매일이 꿈같았다. 아카시아 꽃대를 꺾어 수시로 향기를 맡으며 끝나가는 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아카시아는 봄철 우리 집 별미가 되기도 한다. 튀김을 아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아카시아는 다르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아카시아를 꺾어 뜨거운 기름에 튀기면 오무렸던 꽃이 열기에 활짝 피어난다. 바삭한 꽃 튀김을 한입 물면 입안으로 가득 퍼지는 향기가 일품이다.
후각에 민감한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또렷한 기억의 대부분은 냄새와 연결되어 있다. 엄마의 옷자락에서 나던 포근한 로션의 냄새, 아이스링크장의 서늘하고 물기 어린 냄새, 놀이터의 손때 묻은 기구들에서 나던 쇠 냄새, 그리고 친구들과 뛰놀면서 맡았던 봄날의 아카시아 냄새.
가끔 마음이 힘들 때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뚜렷한 기억들이 위로가 되어 준다. 아마 나이가 더 들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이 문득 두려워질 때, 자존감이 바닥을 보일 때,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고독에 몸서리쳐질 때마다 봄날의 향기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봄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위로를 찾아 헤매는 내 안의 어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삶에는 늘 위안이 필요한 법이다. 이번 봄에도 공기를 떠도는 꽃 향기가 먼 기억들을 불러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