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의자에 앉아 짐을 챙기며 GRAB 정거장으로 가려던 순간, 한 남성이 다가왔다.
"Taxi? Taxi?"
공항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시는 택시 기사였다.
"Tidak, tidak, tidak.(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현금이 없어서 그랩을 타려고 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막무가내로 계속 말을 걸었다.
"Hotel? Hotel?(호텔에 가요? 어느 호텔이에요?)"
"Maaf, saya punya hanya kartu.(저 카드밖에 없어요)"
계속 그랩을 타겠다고 하니 기사분이 물었다.
"Berapa harga Grab ke hotel?(그랩으로 호텔까지 얼마예요?)"
그랩 앱을 확인해 보니 125,000루피아 정도 나왔다. 120,000루피아에 가자고 하셨다. 솔깃해졌다. 기사분께서는 나의 흔들리는 눈빛을 읽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건 카드뿐이었다.
"Saya punya hanya kartu.(저 카드밖에 없어요)"
계속 거부했지만 기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Tidak apa-apa.(괜찮아요)"
그리고 내 캐리어를 낚아채 그의 택시로 실었다.
택시에 따라 올라탔지만, 혼란스러웠다.
'동남아 택시에서 카드가 된다고? 말이 돼?!'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다. 아니, 탈 수밖에 없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계속 말했다.
"Maaf, saya tidak punya uang. Saya hanya bisa kartu.
(죄송한데, 저 지금 돈이 없어요. 카드밖에 없어요.)"
하지만 기사분께서는 괜찮다고 하셨다.
"Tidak apa-apa. Bisa pinjam dari hotel.(괜찮아요. 호텔에서 빌리면 돼요.)"
'호텔에서 빌리라고? 그게 가능한 건가?'
바탐 공항 이동 편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순간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납치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Saya mau pergi ke BIZ Hotel Batam.(비즈 호텔 바탐에 가고 싶어요.)"
"Di sini, ya?(여기 맞죠?)"
호텔 이름을 말하니 기사분께서 바로 알아들으셨다. 차가 출발했다.
"Dari mana?(어디서 왔어요?)"
"Dari Korea.(한국에서요.)"
"Bisa bahasa Indonesia?(인도네시아어 할 줄 알아요?)"
"Saya belajar bahasa Indonesia delapan bulan.(인도네시아어 8개월 배웠어요.)"
기사분께서 놀라워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가셨다. 하지만 처음에는 겁이 나서 계속 "제가 정말 돈이 없어요."만 반복했다. 호텔에서 돈을 빌리는 게 가능할까? 믿기지 않았다.
"Bisa tarik uang di ATM.(ATM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어요.)"
그러다 문득 기사분의 내비게이션을 봤다. 정말로 호텔로 가고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차창 밖으로는 바탐의 캄캄한 밤거리가 보였다. 자카르타처럼 빽빽하지 않았다. 곳곳에 가로등 몇 개가 켜진 고속도로로 고요하고, 한적한 소도시의 느낌이었다.
약 20분쯤 지났을까. 호텔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사분께 다시 현금 이야기를 꺼냈다.
"Sebenernya saya punya sedikit uang.(사실 돈이 조금 있어요.)"
가진 루피아를 꺼내서 보여드렸다. 100,000루피아도 안 됐다. 기사분이 직접 세어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말을 믿으신 것 같았다.
"Ini uang dari mana?(이 돈은 어디서 났어요?)"
"Saya sudah pergi ke Jakarta tahun lalu.(작년에 자카르타에 갔었어요.)"
기사분께서 깎아주신 택시비는 120,000루피아였다. 여전히 부족했다.
"Pinjam dari hotel, ya?(호텔에서 빌려요, 알았죠?)"
기사분께서 계속 호텔에서 빌려서 내라고 하시면서,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겁이 났다. 정말 가능한 걸까? 호텔에서 현금을 빌릴 수 있다고?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호텔 바로 옆에 ATM 기계가 있었다!
"ATM! ATM!(ATM! ATM 있어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기사분께서는 웃으며 그 근처에 내려주셨다. ATM으로 들어갔다. 최소 인출 금액은 250,000루피아. 망설이다가 인출했다. 다행히 인출 수수료도 없었다. 인출 후 택시로 돌아가 120,000루피아를 드렸다. 기사분께서는 너무 오래 기다리신 것 같아 죄송스러워졌다.
"Terima kasih banyak!(정말 감사합니다!)"
기사분께서는 웃으시며 호텔 로비 정문 앞에 캐리어를 내려주셨다. 차에서 내려 심호흡했다. 긴장과 당황의 연속이었지만, 어떻게든 호텔까지 왔다. 모든 대화를 인도네시아어로 했다. 통했다.
'하나씩, 하나씩 해내고 있어.'
환하게 불이 켜진 호텔 로비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