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첫날밤

by 테일러


체크인


환하게 불이 켜진 호텔 로비가 눈앞에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로비로 들어갔다. 리셉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다.



"Selamat malam.(안녕하세요.)"

"Selamat malam. Saya sudah reservasi.(안녕하세요. 예약했어요.)"


여권과 예약 확인서를 건넸다. 직원이 컴퓨터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Anda menginap tiga malam, ya?(3박 맞으시죠?)"

"Iya, benar.(네, 맞아요.)"


순조로웠다. 그런데 직원이 말했다.



"Deposit kunci seratus ribu rupiah.(키 보증금 10만 루피아입니다.)"


'키 보증금?'



처음 듣는 말이었다. ATM에서 찾은 돈에서 택시비 12만 루피아를 냈으니, 남은 건 13만 루피아.

3박 동안 써야 할 돈인데, 여기서 10만 루피아를 또 내야 하다니..


"Nanti kembali?(나중에 돌려받아요?)"

"Ya, saat check-out. Dengan kwitansi ini.(네, 체크아웃할 때요. 이 영수증으로요.)"


사실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돌려준다는 말 같았다.

10만 루피아를 건넸다.


직원이 영수증과 룸 카드를 건네었고, 룸으로 안내해 주셨다.


"Kamar Anda di sini. Selamat beristirahat.(방은 여기에요. 편히 쉬세요.)"

"Terima kasih.(감사합니다.)"






창문 없는 방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는 조용했다.

208호. 룸 카드를 찍고 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그런데, 정말로 창문이 없었다.


'진짜 창문이 없네.'





예약할 때 '모더레이트 룸'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장 저렴한 방. 창문 없다는 설명도 봤지만 '에이,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침대, 책상, 간이 테이블, 옷장. 깔끔했다. 혼자 쓰기엔 딱 좋았다. 캐리어를 펼쳐놓기에도 충분했다.

화장실도 확인했다. 샤워 부스만 있고 욕조는 없었다. 샤워젤도 없었다. 작은 비누 하나만 놓여 있었다.



'3만 원대 방에 뭘 바라겠어.'


3박에 10만 원.

조식이 포함된 가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엄마와의 대화


캐리어를 열고 짐을 정리했다.

씻고 나니 밤 2시가 넘었다.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룸 카드에 적힌 6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핸드폰을 켰다.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이 떴다. 엄마가 SNS에 '좋아요'를 누르셨다.

카톡을 열었다.


"엄마 안 자? 1분 전에 좋아요를 눌렀네."

"응. 깼어. 잘 도착했어?"


"응. 여기 이제 새벽 2시 45분."

"여긴 4시 45분."



한국과의 시차는 2시간.

엄마는 한국에서 새벽에 깨셨나 보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엄마께 전했다.


"비행기에서 옆에 인도네시아 사람이 라면 사줬어. 옆 자리를 양보해 줬다고."

"잘했어!"


"그리고 나 생각보다 인니어를 잘해.

그분이랑도 인니어로 얘기하고 택시 기사분이랑도 계속 인니어로만 얘기했어."

"그럼 아직 도착 안 했어?"


"아니, 도착했어. 지금 이불속.

조식 포함 3박에 10만 4천 7백 원짜리 방. 숙소 바로 앞에 푸드코트 같은 야시장도 있어."

"정말 좋은데~~ 굳!!"



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창문은 없어."

"엥? 그럴 수가?"


"창문 있는 방은 좀 더 비싸.

여기는 1박에 3만 원도 안 되는 방이라 조식 포함이면 나쁘지 않아."



"글쿤. 가성비 짱이네"


핸드폰으로 내일 날씨를 확인했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나 이제 잘래. 근데 여기 계속 비 온대.. 내일 새벽에 일출 보고 올까?"

"비가 오는데 일출 가능해?"


"5시 50분 일출인데, 7시부터 흐려져서 비 온대.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계속 비 와.

근데 그러면 3시간밖에 못 자."

"얼른 자"


"그럼 안녕히~~~~"

"Have a nice trip!"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알람을 6시로 맞췄다. 3시간 반밖에 못 자지만, 일출은 봐야 했다.

눈을 감았다.






첫 조식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6시.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일어나야 했다. 비 오기 전에 일출을 봐야 했으니까.


씻고 나와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조식 시간은 6시부터였는데, 레스토랑 입구에 직원이 서 계셨다.


"Selamat pagi. Nomor kamar?(좋은 아침이에요. 방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Dua-nol-delapan.(208호요.)"


직원이 리스트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조식은 뷔페식이었다.

나시고랭, 국수, 죽, 샐러드, 과일, 음료까지 다양했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았다. 나시고랭 한 스푼, 국수 조금, 오믈렛..

계란 코너에서는 요청하면 즉석에서 오믈렛을 만들어주셨다.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맛이... 없는데?'


간이 심심한 건 좋았는데, 뭔가 맛이 없었다.



'후기 믿고 왔는데...'


과일주스도 싱거웠다. 파파야도 먹어봤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열대과일이라 기대했는데, 이것도 별로였다.

그나마 파인애플이 가장 맛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세 시간밖에 못 잤으니 입맛도 없을 만했다. 그래도 억지로 접시를 비웠다.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투숙객은 많지 않았다.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태국인으로 보이는 분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다시 방으로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카메라, 핸드폰, 지갑..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괜찮아. 일출 보고 오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룸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문을 나섰다.

로비로 내려가 그랩 앱을 켰다.


바탐에서의 첫 아침이 시작됐다.


이전 07화6. 첫 시련, 공항에서 호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