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랩 앱을 켰다. 바탐 일출 명소인 'Harbour Bay'까지는 10분 거리.
3시간밖에 못 잤지만 기대됐다.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도 바탐은 풍경이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기사분이 도착했다.
"Selamat pagi. Saya mau pergi ke Harbour Bay.(좋은 아침이에요. 저는 하버 베이로 가고 싶어요.)"
"Baik.(알겠습니다.)"
차가 출발했다.
바탐의 새벽 거리는 고요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일출은 잘 볼 수 있겠지?'
10분 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해는 떠 있었다.
'아, 늦었구나.'
쨍하고 떠오르는 일출이 아니라 어스름하게 뜬 해.
그냥 평범한 선착장이었다.
'에이, 뭐 어때. 일찍 일어났는데.'
그런데 신기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인데도 조깅하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른 새벽부터 여러 명이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날씬한 것도 다 이유가 있구나.'
문득 부러웠다.
나도 한국에서 이렇게 아침마다 조깅할 수 있을까?
항구라서 그런가 싶어 지도를 확인했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beach'가 있었다.
'거기는 진짜 해변이려나?'
차도 옆길을 따라 걸었다. 30분이면 되겠지.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이상했다.
컨테이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도착했지만, 이름만 beach였다.
화물용 선착장의 비치는 출입 제한 펜스로 막혀 있었다.
'여기도 아니네.'
30분을 걸어왔는데 허탈한 심정이었다.
다시 입구로 돌아와 그랩을 불렀다. 그런데 하필 바로 앞이 경찰서였다.
거리에는 현지인 오토바이들이 슝슝 지나다녔다.
'괜찮겠지?'
한 현지인이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Taxi?"
"Tidak, saya tunggu Grab.(아니요, 그랩 기다려요.)"
"Anda sedang apa di sini?(여기서 뭐 하세요?)"
그는 웃으며 경찰서를 가리켰다.
"Pergi ke kantor polisi?(경찰서 갔다 왔어요?)"
농담이었다.
나도 웃었다. 아마 이런 관광객이 처음은 아닌가 보다.
"Saya datang karena ada tulisan 'beach', tapi tidak ada pantai.(비치라고 쓰여있어서 왔는데 해변이 없어요.)"
그 사이에 그랩이 도착했다.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 누워 있으니 핸드폰이 울렸다.
비행기에서 만난 바탐 친구, 티틱이었다.
"Selamat pagi Tiara.(좋은 아침이에요, 티아라.)"
"Selamat pagi Titik!(좋은 아침이에요, 티틱!)"
"Tiara maaf hari ini saya belum bisa.(티아라, 미안해요. 오늘은 못 만날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Saya tiba tiba demam lagi.(갑자기 열이 다시 났어요.)"
한국에서 독감에 걸렸었는데, 다시 열이 났다고 했다.
사실 조금 아쉬웠다.
현지인 친구와 함께 돌아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Tidak apa-apa, benar-benar tidak apa-apa. Jangan khawatirkan saya, silakan istirahat yang cukup dan semoga cepat pulih ya.(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저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고 빨리 나으세요.)"
'오늘은 혼자 돌아다녀야겠네.'
원래 세워둔 일정이 있었지만, 피곤했다.
근처만 걷기로 했다.
'마트'를 검색했다.
걸어서 30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신용 카드도 쓸 수 있고, 현지 음식도 먹을 수 있겠다!'
호텔에서 나와서 걸으며 바탐 동네를 구경했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다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집들뿐이었다.
한적했다.
'이런 분위기구나.'
Grand Batam에 가까워졌다.
외벽에 입점 브랜드 간판들이 쭉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CGV가 있었다.
'어? CGV?!!'
바탐에 CGV가?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 반가워서 브이로그를 찍었다.
"Sekarang, saya tiba di Grand Batam.(저는 지금 그랜드 바탐에 도착했어요.)
Dan saya cari CGV.(그리고 CGV를 찾았어요.)
CGV adalah bioskop Korea!(CGV는 한국 영화관이에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중앙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무슬림 국가인데 크리스마스트리가?'
무슬림 사람들이 대다수이면 크리스마스도 약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신기했다.
CGV 로비는 한국 영화관과 비슷했다.
조금 더 환하고 베이지 톤이었는데, 평일 오후라서 한산했다.
문득 티켓 가격이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는 할인받아서 한 편에 4천 원에 보곤 했었다.
'여기는 얼마일까?'
티켓 가격은 43,000루피아.
환율 계산기를 두드렸다.
한화로 3,800원이었다.
'헐, 싸다!'
마침, 상영을 곧 시작하는 주토피아2가 있었다.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지만, 이 가격에 갑자기 땡겼다.
'오늘 갈 곳이 많은데... 근데 이 가격에?'
곧장 매표소로 갔다.
"Satu tiket untuk Zootopia 2, tolong.(주토피아2 티켓 한 장이요.)"
그리고 덧붙였다.
"Sebenarnya, CGV dari Korea. Saya dari Korea.(사실 CGV는 한국 거예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직원이 싱긋 웃었다. 뭔가 자랑스러웠다.
상영관에 들어갔다.
상영 전 팝코니 캐릭터가 나왔는데, 한국과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영어 음성에 인도네시아어 자막이 나왔다.
영화는 동물들이 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장면을 보면서는 눈물이 났다.
혼자 이국땅에 와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마트를 돌아다녔다.
인도네시아 과자, 라면, 간식들.. 눈여겨봤던 것들을 샀다.
'언제 또 오겠어.'
짐을 숙소에 두고 나고야 힐로 향했다.
거기서도 마트를 둘러봤다. 할인 품목만 샀다.
나고야 힐 옆에는 사원이 있었다.
'Masjid jabal arafah batam'
혼자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는 왠지 아니라서 사원 옆에 있는 전망 타워에 올라갔다.
현재 시각은 밤 9시 40분. 폐장 20분을 앞두고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그곳엔 나 혼자였다.
올라가니 바탐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멀리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낮은 건물들로 이뤄진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아침에 보려던 일출은 실패했지만, 이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이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네.'
타워를 내려왔다. 저녁 10시였다.
배가 고팠다. 아침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영화를 보고, 마트를 돌아다니느라 점심도 거른 채였다.
호텔 앞 나고야 푸드코트로 갔다.
20~30개 음식점으로 빼곡한 그곳은 야외 야시장처럼 북적거렸고, 시끌벅적했다.
목요일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술 마시는 사람들, 밥 먹는 가족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젊은이들.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 분위기 좋은데?'
한 바퀴, 두 바퀴 돌았다.
메뉴판들을 봤다. 다 맛있어 보였다. 고민됐다.
자리를 잡으니 종업원이 왔다.
주문하기 전에 핸드폰을 꺼냈다.
인도네시아어 수업 때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음식 목록에는
른당, 박소, 사떼, 피상 고랭이 있었다.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가볍게 먹자.'
다이어트 중이라 밤 10시 반에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Saya mau pesan es cendol.(저는 센돌을 주문하고 싶어요.)"
종업원이 고개를 저었다.
"Tak ada. Hanya siang.(없어요. 낮에만 해요.)"
'아, 낮에만 파는구나.'
"Sate sapi satu, es celamba mudah satu, pisang goreng satu.(소고기꼬치 하나, 코코넛 하나, 바나나튀김 하나요.)"
꼬치 가게 사장님이 오셨다.
"Hanya satu sate?(꼬치 하나만요?)"
'어? 너무 적게 시킨 건가?'
"Iya, saya sendiri.(네, 혼자예요.)"
나온 건 10개짜리 꼬치였다.
'아, 하나가 10개이구나!'
기대를 안 했는데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소고기찜처럼 진득한 소스의 간이 입맛에 딱 맞았다.
배고파서 그런지 몰라도 새우칩을 찍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또 먹고 싶은데?'
ES CELAMBA MUDAH는 머리가 잘린 코코넛 안에 과육이 들어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했다. 안에 붙어있던 하얀 과육까지 깨끗하게 긁어먹었다.
피상 고랭은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Tunggu sebentar ya.(조금만 기다려요.)"
10분쯤 지나서야 바삭한 바나나튀김이 나왔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맛있었다. 하지만 반은 남겼다.
'포장이 되면 내일도 먹을 텐데...'
하지만 피곤했다. 더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메뉴의 가격은 각각 2,500원에서 3,000원이었다.
'진짜 싸다.'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데,
그런 느낌으로 코코넛과 소고기꼬치, 바나나튀김을 먹었다.
동남아의 음식 문화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숙소에는 11시쯤 돌아왔다. 푸드코트가 바로 앞이라 편했다.
짐을 정리하고 씻었다. 3시간밖에 못 자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몸이 무거웠다.
12시쯤 침대에 눕자마자, 깊게 잠들었다.
바탐에서의 첫날에는 일출을 보는 건 실패했지만,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했다.
CGV, 푸드코트, 그리고 혼자서도 괜찮다는 것.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앞으로 이틀이 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