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의 날씨 운을 마지막 날에 몰아 쓴 건지,
계속 날이 흐렸던 것과 다르게 날이 화창해서 돌아다니기에 더 좋은 날이었다.
출국 비행기는 저녁 11시 45분. 시간이 넉넉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조식으로 향했다.
판단 젤리와 떡처럼 달콤한 디저트가 나왔다. 푸딩을 좋아해서 과일과 함께 한 접시 담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시고랭과 삼발 소스도 듬뿍 담아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나시빠당 전문점.
Rendang을 먹기 위해 호텔 직원에게 추천받은 가장 가까운 맛집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어 수업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Rendang adalah salah satu makanan paling enak di dunia. CNN pilih rendang nomor satu!(Rendang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예요. CNN이 Rendang을 1위로 뽑았어요!)"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는 현지인들만 올 것 같은 그런 동네 맛집 같은 분위기였다.
심지어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무슬림도 있었다.
테이블마다 물 주전자와 물그릇이 있었는데,
앞 테이블에서는 익숙한 듯 그 주전자로 물을 따라서 손을 씻었다.
"Saya mau pesan Rendang satu.(른당 하나요.)"
얼마나 맛있을까.
구내식당에서나 볼 법한 동그란 접시에 쇠고기와 야채, 멸치 등 반찬이 한가득 나왔다.
한 입 먹었는데,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위생적인 분위기에 예민한 편이라 그 영향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입맛에 안 맞았다.
바틱을 찾아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날 비가 와서 길이 더러웠다.
요즘에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시장도 건물 안에 있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바탐의 전통시장은 아직 흙바닥 위에 천막을 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시장을 돌아다녔다.
옷부터 가방, 신발, 모자, 그리고 캐리어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옷 가격은 한 장 당 10,000루피아. 약 870원.
바틱을 파는 곳은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전통적인 무늬의 옷을 발견해서 직원분에게 여쭤봤다.
"Saya cari batik. Pakaian ini seperti batik?(바틱을 찾고 있어요. 이거 바틱 같아요?)"
그중에서도 바틱 같은 옷들은 옷 스타일이 좋은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주셨다.
"이걸 어떻게 입으려고? 아기 엄마 옷 스타일 같아."
'여기는 아니네.'
다시 쇼핑몰로 갔다.
시장에서 가까운 Nagoya hill 몰에서 바틱 매장을 발견했다.
'여기는 어떨까?'
들어갔다. 예쁜 셔츠들이 있었다.
"Saya cari batik.(바틱을 찾고 있어요.)"
몇 개 골라주신 옷들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Menurut Anda, Ini atau ini, bagus yang mana?(이거 아니면 이거, 어느 게 저와 잘 어울릴까요?)"
"Yang ini lebih cocok.(이게 더 어울려요.)"
나도 그 옷이 더 마음에 들었다.
셔츠를 추천해 주신 점원분의 솔직하고 객관적인 응대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셔츠라서 활용도도 좋을 것 같았다. 소재도 실크라서 부드러웠다.
가격표를 봤다.
250,000루피아. 약 21,500원. 전통시장보다 배로 비쌌다.
하지만 퀄리티가 비교할 수 없이 고급스러워 보이긴 했다.
처음부터 시장이 아닌 더 비싼 바틱을 봤다면 고민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망설이며 고민했다. 정말 고민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인도네시아어를 포기하지 않은 나를 위한 선물로 바틱셔츠를 구매했다.
'예쁘다.'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그 언젠가 인도네시아 행사를 할 때 입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바틱 셔츠를 입고 대사관에서 발표하게 될 일이 곧바로 생길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