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사관에서

by 테일러


대사관에서


발표 당일, 바틱 셔츠를 꺼내 입었다.

거울을 봤다.



'잘 어울리네.'


바탐에서 샀던 그 셔츠를 입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샛강역 3번 출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전날 받은 공문과 이름을 확인하고 들어갔다.


발표자들은 9시까지 도착했다.

엄마와 막내이모는 10시 오시기로 했다.


리허설이 시작됐다.

제출한 영상과 음악이 잘 나오는지 확인했다.

원래 두 번째 순서였던 브이로그 부문 발표는 당일 마지막으로 변경되었다.



'마지막이구나..'

오히려 좋았다. 그동안 외울 시간이 충분했다.



둥근 테이블이 앞에 3개, 중간에 2개, 뒤에 3줄.

앞줄은 BIPA 관계자분들, 중간은 결승 진출자, 뒷줄은 가족과 참관인이 앉았다,


나는 Finalis(결승 진출자) 자리에,

엄마와 막내이모는 Tamu umum(일반 참관인) 자리에 앉으셨다.

대사관도 처음이고, 이런 자리도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발표자라니..


결승 진출자들 중에는 화려한 바틱을 입고 오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바탐에서 사 온 실크 촉감의 그 셔츠를 입었다.


감기는 여전히 심했다.

독한 목감기로 말하는 것도 침 삼키는 것도 힘들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 약 복용량을 두 배로 늘렸더니 다행히 목소리가 나왔다.






대회 시작


10시가 되자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사관 관계자분들과 BIPA 선생님들 소개가 이어졌다.


LOMBA 대회는 노래 - 연설 - 이야기 - 브이로그 순서.


노래 부문은 인도네시아어를 처음 접한 지 2개월밖에 안 된 분들도 계셨다.


연설 부문에는 내가 속한 2E반에서도 한 분이 결선에 올랐다.

우리 반에서 두 명이나 결승에 왔다. 기뻤다.


BIPA는 1급부터 7급까지 있는데, 급수별로 반도 1반~많게는 5반(한 반에 20명 내외).

총 350명이나 되는 수강생들 중에 4가지 부문별로 총 3명씩 뽑혔다.

그중 두 명이 우리 반에서 뽑혔다는 사실도 기뻤다.


이야기 부문에서는 배경과 막대 인형을 직접 만드신 분이 인상적이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부산, 제주 등 지역에 살고 있어 줌으로 참여하신 분들도 계셨다.






마지막, 브이로그


마지막으로 브이로그 부문의 순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끝 차례였다.


앞선 두 후보자분들은 인도네시아어를 정말 잘하셨다.

한 분은 5급, 나는 인도네시아어를 처음 공부한 지 아직 8개월 차 새내기였다.


난이도로 보면 같은 부문의 다른 후보들에 비해 밀렸지만

모르는 단어들도 많고 아직 안 배운 말들도 많아서

못 알아듣는 말들이 나올 때는 긴장할 시간에 속으로 내 걸 외웠다.



'나중에 배우겠지, 뭐.'


내 차례가 와서 무대에 섰다.



'시작이다.'


"Selamat siang. Nama saya Tiara dari BIPA 2E.(좋은 오후입니다. 저는 BIPA 2E의 티아라입니다.)"

"Terima kasih atas kesempatan ini.(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프닝의 분위기는 좋았다.

발표를 이어갔다.


인도네시아 사진들을 소개하며 나를 이야기했다.

맨 마지막 차례라서 관중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되었는데,

나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함에 맞장구를 쳤다.


프레젠테이션은 질의응답으로 나올 법한 질문들을

미리 해소해 질문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소개해서 가산점을 받고 싶었다.

발표 중간중간에 소통을 했다.



"Jakarta adalah ibu kota Indonesia, tapi terlalu mahal."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지만, 물가가 비싸요)


"Hahahahahaha."(하하하하하)


"Haha. Iya, benar!"(하하. 네, 맞아요)"







연습을 많이 한 덕분일까.

잘 안 외워지던 한 문장은 끝까지 괴롭혔지만,

오프닝 때 청중들과 주고받는 오프닝 인사라던가

당일에 추가로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무대에서 발표할 때는 생각 놓고 흘러가는 대로 했다.

발표가 끝났다. 박수가 쏟아졌다.



나중에 막내이모께서 찍어주신 발표 영상을 보니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내가 봐도 정말 참 잘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내 모습을 떠올리시던 엄마는

"떨려서 발표를 잘 못 할 것 같았는데 잘하더라"라고 하셨다.


다만, 브이로그 영상까지 잘 나왔으면 100% 완벽하게 만족했을 텐데

발표 당시에는 제출한 브이로그의 화면과 소리의 싱크가 어긋나서 멘붕이 왔다.


제대로 완성된 걸 보냈고 확인도 받았는데,

대회 때는 정작 소리가 영상보다 더 빨리 나왔다.

바로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셨다.

6분 58초 가량을 싱크가 맞지 않는 상태로 봤다.


'전혀 안 괜찮은데... 망했다.'






수상


모든 발표가 끝난 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인도네시아 맛집에서 주문한 도시락이었다.


"인도네시아식 뷔페가 나온다"라는 말로

엄마와 이모를 초대해서 조금 미안해졌다.


메뉴는 강황밥과 할랄식 반찬. 계란, 소고기, 닭고기로

반찬들은 주로 매콤했다. 인도네시아는 날씨가 더운 영향으로 매운 음식이 많았다.


점심 식사 후 1시간 반 동안 쉬면서는 대사관 로비에서 사진도 찍고,

인도네시아 음악도 흘러나와 선생님들은 노래를 부르시거나 춤을 즐기셨다.



1시 반.

두구두구두구...

대망의 수상자 발표 시간!


발표 부문 순서대로 수상이 이어졌다.

브이로그는 마지막 부문이었다.


결승 진출자는 부문별로 총 세 명이니, 수상자도 총 세 명.

3등부터 부르셨는데, 나와 이름이 비슷한 분이 호명되셔서 순간 나를 부르신 줄 알았다.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앞으로 나가시는 분을 보고 '내가 아니었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2등을 부르셨는데 성씨가 '김'이 아니었다.

앞에 무대를 보니 줌으로 발표에 참석한 분께서 받고 계셨다.

엄마와 이모를 보면서 "내가 1등인가 봐!" 중얼거렸다.

정말로 1등 상을 받았다. 엄마와 막내이모께서 환호해 주셨다.





1등 상금은 20만 원.

현장에서 현금으로 받았다.







인터뷰


수상 후 한 인도네시아 교사분이 다가오셨다.


"저, 1등 하신 분 맞으시죠? 인터뷰 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Tidak apa-apa.(괜찮아요.)"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막상 인도네시아어로 하려니 어떻게 풀어낼지 몰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Saya senang karena saya dapat juara satu.(1등 상을 받아서 정말 기뻐요!)"


"Terima kasih untuk ibu saya, tante saya, dan guru saya Alisya. Ayo, belajar bahasa Indonesia!(저의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알리샤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해요!)"



선생님께서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 마디 하셨다.


"Batik Anda sangat cantik!(바틱이 정말 예쁘네요!)"

"Terima kasih. Saya beli di Batam.(감사합니다. 바탐에서 샀어요.)"


"Cocok untuk Anda.(당신한테 잘 어울려요.)"


바탐 매장에서 점원분이 하셨던 말과 똑같았다.



'정말 잘 골랐구나.'



바틱 셔츠를 입고 대사관에서 발표하는 순간, 이 셔츠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나를 위한 선물이자 그리고 계속 나아가라는 의미였다.



바탐에서의 72시간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72시간 동안 배운 것은 인도네시아어만이 아니었다.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것.

머릿속에만 있던 것을 꺼내 쓰면 내 것이 된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을 본다는 것.


인도네시아어는 계속된다.

바틱 셔츠와 함께. 그리고 그때의 용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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