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바탐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게 된 시작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남겨보려 합니다.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브이로그 부문 1등상 수상을 하고 돌아온 날,
캄캄한 방 안에 덩그러니 누워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한국어가 어눌한 외국인이었다.
'대사관에서 온 전화인가?'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상대방은 영어로 대답했다.
'어? 영어?'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신청했던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다.
하루 종일 인도네시아어만 쓴 탓일까. 영어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어, 영어, 한국어. 세 언어가 뒤섞여 나왔다.
"Sebenarnya, hari ini saya..
아, 아니다.. Actually, today I..."
"Wow! 몇 개 국어 할 줄 알아요?"
"인도네시아어, 영어, 일본어 조금, 한국어요!"
한 달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어 공부 중'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구사할 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검증된 자신감이었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밤새 잠을 뒤척이며 가족들이 찍어준 대사관에서 내가 발표한 영상과 인터뷰 영상을 번갈아 봤다. 스스로가 봐도 전혀 떨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발표를 하면서 '발표를 위한' 외워 말하기가 아닌 능청스럽게 유머도 건네며 말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인도네시아어도 구사할 줄 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대단하네."
그리고 스르르 잠에 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대사관에서의 하루가 서서히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해프닝으로 끝내긴 아까운데...'
문득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어떨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주변에 최근에 브런치에서 연재를 시작한 지인분이 떠올랐다.
바로 메시지를 드렸다.
"언니~ 브런치 작가 데뷔 축하해요! 방금 구독 완료!"
"ㅋㅋ 고마워요. 국내인가요, 국외인가요?"
"국내예요~~!!"
"짝짝짝"
"저 사실.. 브런치 작가 도전하고 싶어서요"
"앗"
"언니 글 읽어봤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오마나 진짜? 다행이다ㅠㅠ 근데 테일러는 그냥 바로 해도 될 것 같은데"
"혹시.. 브런치 승인하려면 어떻게.. 하셨나요?"
"테일러 해외 다녀온 이야기만 써도 될 듯. 엄청 쉬워요!"
"브런치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서..ㅠㅠ"
"홈페이지에 작가 되기 들어가서 자기소개랑 글 세편 올리라고 안내 나와요"
"언니 혹시 지금 통화되시나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실 브런치는 '작가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처럼 왠지 전문적인 작가들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 문턱 높은 느낌에 그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 브런치에 먼저 도전하신 지인 언니가 알려준 비결은 '희소성 있는 주제'. 그리고 감사하게도 한참 동안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사람인데, 왜 안 하고 있었냐며..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덕분에 용기 많이 얻었어요!! 바로 도전!!"
"잘할 수 있어요. 바로 가즈아!!!!"
브런치작가가 되려면 우선,
가입 후 서랍에 3편의 글을 작성해두어야 했다.
어떤 글을 쓸 예정인지 대략적인 기획안도 필요하다.
이 정도 준비가 되었으면, 작가 신청 도전!
기획과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주제도 정했다.
'바탐 여행 에세이'
발리가 아닌 소도시에서 72시간 인도네시아어만 쓰기.
그리고 그것을 담은 브이로그로 대사관 1등. 희소성 있는 이야기였다.
브런치 심사는 보통 5일 정도 걸린다고 안내문에 나와있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오매불망 연락만 기다렸다.
'왜 연락이 안 오지?'
심사 대기 중이라 어딘가 줄을 서 있을 텐데 신청한 지 몇 시간 만에 통과되신 분도 있다는 말에
연락이 없는 동안 제출한 신청서도 수정하고, 서랍에 작성한 글들도 더 탄탄하게 수정했다.
그러고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브런치에서 보낸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언니~!!!!! 저ㅠㅠ 됐어요!!"
"내가 그럴 줄 알았지~~ㅋㅋㅋㅋ 축하축하"
"감사합니다~~"
희소성도 중요하게 보지만,
내 생각에는 '연재가 가능한지'도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연재를 시작했다.
첫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글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디까지 쓸까? 어떤 순서로 쓸까?'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바탐으로 떠난 지 한 달 차에 접어들자,
어떤 순간들은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바탐 도착 직후, 택시로 납치되는 거 아니냐고 마음 졸이며 호텔로 가는 동안 운전기사와 나눈 대화,
푸드코트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 동물원에서 직접 동물들과 마주했던 '살아있는 주토피아 경험'..
글로 남기지 않으면, 이 순간들이 사라질 것 같았다. 기억이 기록될 때, 진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다시 바탐에 가는 느낌이었다. 짧게 느껴진 2박 3일을 글로 정리하니,
많은 것들을 느끼며 생각보다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첫 편은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발행했다.
일주일에 두 편씩 연재한 덕분에 12월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대사관 발표로 보람찬 12월이었는데, 브런치까지 시작하며 두 배로 보람찼다.
이 기회에 감사했다.
바탐 에세이는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다. 라이킷도 달렸다.
댓글은 많지 않았지만, 그 작은 하트 하나하나가 고마웠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었구나.'
작은 반응이었지만, 나의 글과 경험이 나를 넘어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다.
첫 번째 구독자는 대사관에서 열심히 나를 응원해 주셨던 나의 막내 이모셨다.
감사하게도 구독 선물도 보내주셨는데, 가족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바탐 에세이는 작은 불씨가 됐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평생 숙원이었던 유럽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도 쓰기 시작했다.
도전이 도전을 낳았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본편 14편과 몇 편의 짤막한 에피소드 번외편으로 이 에세이는 연재를 마칠 예정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배움도, 도전도, 인생의 순간들도.
소재가 다를 뿐, 기록은 계속된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