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가끔 Salis가 물었다.
"Kapan kami pergi ke akuarium?(아쿠아리움에는 우리 언제 갈까?)"
“Akhir pekan ini?(이번 주말에?)”
"Baik!(좋아!)"
하지만 약속 전날, 시험 점수가 낮게 나왔다.
약속도 미루고, 주말을 반납하고 공부했다.
다음 주에는 다행히 높은 점수가 나왔다.
연수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쯤 가니,
롯데몰 근처에 도착했다.
점심으로는 유부초밥을 먹었다.
Salis는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유부초밥은 괜찮았다.
약소한가 싶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점심 식사 후에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입장료는 비쌌다. 다행히 학생증으로 할인받았다.
들어가니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그곳에 있었다.
네온 빛이 나는 물고기들을 처음 봤다.
Salis가 물고기 하나하나를 오래 바라봤다.
물고기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인어공주 쇼도 시작됐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스크 하나만 쓴 채 중간중간 숨을 쉬러 올라오는 인어공주들이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 사이를 헤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별가사리도 많았다.
한국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데, 여기는 많았다.
구경 중에 Salis가 웃으며 말했다.
"Ikan ini tidak mau berfoto dengan saya.(이 물고기는 나랑 사진 안 찍으려고 해.)"
"Wkwk.(ㅋㅋ)"
하노이 아쿠아리움은 잠실 롯데타워만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신기한 바다 생명체들도 많았다.
Salis가 말했다.
“Ibu saya mengelola akuarium.(어머니가 수족관을 운영하셔.)"
"Wow! Kalau begitu, kamu sudah melihat banyak ikan!(그러면 물고기를 많이 봤겠네!)"
"Iya, jadi saya suka banyak ikan!(응, 그래서 나는 물고기를 많이 좋아해.)
Saya juga mau berenang seperti ikan-ikan.(나도 물고기들처럼 수영하고 싶어.)"
가오리 쇼도 봤다. 가오리가 밥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해파리관은 관리가 잘 되어 있어 해파리 멍을 때렸다.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없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해파리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쿠아리움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물개 쇼를 봤다.
물속을 빠르게 헤엄치는 물개들을 보니 수족관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펭귄은 없었다. 대신 새가 있었다.
"Saya belum pernah lihat penguin.(나 아직 펭귄을 본 적이 없어.)
Di akuarium Indonesia juga nggak ada, pengen banget lihat.
(인도네시아 아쿠아리움에도 펭귄이 없어서 한 번 보고 싶어.)"
그 말에 생각해 보니 인도네시아는 우기와 건기만 있는 나라라서 겨울도 없고,
펭귄은 더더욱 본 적이 없겠구나 싶어졌다.
그날 저녁에는 Salis가 미리 알아본 신상 카페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피크 시간대라 그랩이 안 잡혔다. 아쉬운 대로 롯데몰 맞은편 카페로 갔다.
급하게 간 카페였지만, 아늑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좋았다.
마침 그다음 주에 있는 내 생일을 앞두고, 카페에서 몰래 컵케이크도 먹었다.
그리고 우연히 엄마와 할머니, 막내 이모까지 줄줄이 전화를 주셔서 영상통화를 했다.
Salis는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했다.
"엄마~ 나 지금 인도네시아어 선생님이랑 있어!"
"어머, Halo?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정말 예쁘시네~ 좋겠다! 선생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라~!"
"감사합니다"
그날, 우리 엄마를 비롯 가족들,
그녀의 엄마까지 전화로 소개를 주고받았다.
그날 하루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해파리처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Salis 덕분이었다.
Salis는 물고기와 동물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Salis가 말했다.
"동물원에도 가보고 싶어!"
마침 찾아보니 Salis네 집 근처에 투레 공원이 있었다.
한국의 서울대공원 같은 곳이었다. 동물원과 호수공원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그다음 주,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동물원에 들어서자 Salis가 신이 났다.
공작새, 악어, 말, 사슴...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Salis가 동물 이름을 하나하나 인도네시아어로 알려줬다.
그러다 뜬금없이 Hari mau를 말했다.
"Saya mau melihat harimau.(나는 호랑이를 보고 싶어.)"
"Eh? Hari mau?(응? 하리 마우?)"
"Iya. Harimau.(응. 호랑이.)"
나는 당황했다.
"Hari = 오늘/날, Mau = 원하다.. 그럼 '오늘을 원한다'?"
Salis가 웃으며 말했다.
"ㅋㅋㅋ Tidak! Tiger adalah harimau!(아니야! 호랑이가 하리마우야!)"
'이름 너무 막 지은 거 아니야...?'
그날 인도네시아어에 대해 다시 한번 문화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Salis는 98년생 호랑이띠였다. 그래서 호랑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좁은 철창 우리 안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는 불쌍해 보였다.
Salis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인도네시아 동물원은 이렇게 작지 않아.
땅이 넓어서 동물원도 사파리처럼 광활해. 철창 우리 자체가 없어."
"그럼 동물들이 돌아다녀?"
"응! 그래서 우리가 차를 타고 구경해야 해. 동물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느낌이야."
인도네시아에서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산다고 했다.
호랑이나 사자가 차 문을 발로 여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갇혀 있는 동물들이 불쌍해 보여."
어쩌면 이런 추억 때문에,
바탐에서 주토피아 동물원을 꼭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슴과 말 우리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모이(당근과 상추)를 한 봉지씩 들고 있었다.
어렸을 때 서울대공원에서 모이 주던 추억이 났다. 우리도 한 봉지 샀다.
"여기!"
옴뇸뇸뇸... 사슴과 말이 다가와 모이를 먹었다.
Salis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회색 토끼를 키워봤어."
하마는 신기한 소리를 내며 목욕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하마를 바라봤다. 하마 멍을 때리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물원을 둘러싼 호수에는 오리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Salis가 관심을 보였다.
"Kamu mau?"
나는 사실 오리배를 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노이니까, 싼 맛에 도전했다.
가격은 성인 2인 30분에 한화로 4,500원.
구명조끼를 입고 오리배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거 정말 데이트용 맞아...??'
페달이 너무 무거웠다. 운동 기구 같았다.
체격이 작은 여자 둘이 낑낑대며 페달을 밟았다.
그래도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며 저 멀리 롯데몰이 보였다.
생각보다 가까웠다.
“Nanti sore mau makan malam di Lotte Mall?(이따 롯데몰에서 저녁 먹을래?)”
“Oke, mau!(좋아!)”
오리배를 마치고 롯데몰로 향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며 한 층씩 올라갔다.
그때 '두끼'가 나왔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Salis에게 매운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슬림(할랄) 때문에 돼지고기를 못 먹어서 걱정했다.
다행히 두끼 육수는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직원분께 확인해 봤더니 어묵이나 김밥 말고는 다 먹을 수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두끼를 처음 먹어본 Salis는 매운맛에 눈을 크게 떴다.
물고기, 호랑이, 오리배, 잊지 못할 '하리마우',
Salis에게 첫 경험을 시켜준 한국식 즉석 떡볶이까지..
함께한 하루하루가 추억으로 쌓였다.
Salis와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비록, 최근에 바탐에 갔을 때는 반둥과의 거리가 멀어서 만나지 못했지만,
대사관에서 발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는 무척이나 기뻐해 줬다.
이 글을 Salis에게 보냈더니 메시지가 왔다.
"하노이에서 함께 인도네시아어를 배운
좋은 추억을 써줘서 감사해요.
글을 읽으면 미소가 절로 떠올라요.
이미 1년 전 일이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져요.
언니가 거기 있는 것 같아서 되게 따뜻했어요.
어디에 있든 항상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메시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나의 첫 인도네시아 선생님.
그리고 진짜 친구, Salis.
언젠가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