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의 3대 숙제
GNIB, 집 구하기, 일자리 구하기.
GNIB도 받았고, 집도 구했다.
이제 남은 건 일자리였다.
구직 활동을 하기 전,
꼭 필요한 것은 이력서(CV)였다.
한국에서 썼던 것들 위주로 만들었다.
이름, 주소, 연락처, 비자 종류.
경력 사항 및 세부 업무, 학력, 언어 능력, 자격증.
아일랜드의 일자리 중에는
레스토랑, 패스트푸드, 마켓, 호텔 등의 서비스 직종이 많았다.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서버나 요리사.
하지만 나는 그런 경력이 없었다.
일단 다 적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STAFF WANTED'라고 써 붙인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에 CV를 직접 또는 이메일로 보냈다.
'100개의 CV를 돌려도
연락 올까 말까 하다더라.'
워홀러의 현실이었다.
코리아 푸드 페스티벌의
쿠킹 데모를 구하는 일자리에 메일로 지원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첫 면접이더라도 뭔가 준비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Pennys에서 구매한 까만색 트라이얼 의상을 입고 갔다.
셔츠, 바지, 신발, 풀 세트가 총 17유로.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일할 때 입는 옷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이템당 이 가격인데.'
이렇게 차려입고 면접 보러 갔다.
면접은 영어로 진행됐다.
업무는 더블린에서 열리는 코리아 푸드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음식과 제품들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된장, 고추장, 김, 부침 가루 등을 사용해 요리한 후
그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었다.
면접 때도 그 상품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면접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떨렸다.
평소에는 영어로 수다도 잘 떠는데.
면접관이 친절하게 말했다.
"열정 있는 건 알겠는데, 그걸로는 부족해요.
좀 더 말할 게 없나요?"
기회를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기회를 날렸다.
합격 연락이 없었다.
'아직 처음이니까.
CV도 다양하게 넣어보고, 다시 도전해 봐야지.'
수입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고 계속 알바를 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봉사자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Irish Cancer Society.
거의 모든 수입을 암환자들을 위해 기부하는 보세샵이었다.
매니저를 제외한 직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됐다.
뭐라도 경력을 쌓으면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수도 있을 거라는
한줄기 희망이었다.
꼭 수입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때우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영국 등 유럽 각지에는
이런 목적의 세컨드핸드샵이 많이 있었다.
우리 동네 Kimmage에도 이런 샵이 두 군데 있어서 둘 다 지원했다.
한 곳에서는 지원 즉시 바로 다음 주부터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메일을 준다는 말을 하고선 메일도, 아무 연락도 없었다.
한 군데에서만 근무하는 것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의류 상품들뿐만 아니라
책, DVD, 액세서리, 컵, 일상용품 등
다양한 것들을 판매하는 세컨드핸드샵.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품들은
전부 기부받은 물품이었다.
'기부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으면
가게가 돌아가지 않는 건가?'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하루에도 4건 이상의 기부 물품들이 들어왔다.
보통 포대자루나 쇼핑백 한가득.
기부품들 중에서 낡아 색이 바랜 책들,
찢어진 옷, 부속품이 떨어진 신발 등은
가차 없이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한 주 동안 판매 매대에 있던 옷 또는 신발들은
모아서 다른 센터로 보내졌다.
창고이자 작업실.
기부 물품이 들어오면 매니저가
판매 가능한 의류와 하자가 있는 상품을 선별해서 버렸다.
선별 과정에서 통과된 상품들은
그 주에 판매하거나 대기 라인으로 들어갔다.
선별된 의류에는 가격표를 부착했다.
판매가 시작된 날짜와 가격이 기재됐다.
그러고 나서 스팀 기계로 구김을 다려서 새 상품처럼 만들었다.
준비 과정부터 판매까지 이뤄지는 과정이
의류가 판매되는 과정과 같았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나로서는 친숙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라벨 총도 그렇고, 스팀기도 위험하다고 여긴 듯했다.
나는 작업대가 아닌 매장으로 보내졌다.
옷을 정리하거나
가끔씩 포스기로 기부 물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옷을 정리하는 일은 색상별로 옷이 걸려 있는 공간이 달랐고,
색상별 행거는 사이즈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날 정리를 마친 행거도
오전 판매를 마치고 나면 사이즈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색상별, 사이즈별로 정리해서 걸어놓았다.
이 일을 하면서 옷을 꽤나 많이 봤다.
탐나는 옷들도 많았지만, 산 적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근무 마지막 날 눈여겨본 6유로짜리 블랙 무스탕이었다.
'그냥 사버릴걸..'
의류뿐만 아니라 가방, 그릇, 장식품 등
다양한 기부 품목들을 판매하는 세컨드핸드샵에는
구석구석 찾아보면 정말 신기한 기부 물품이 많았다.
실생활에 꽤 유용한 것들도 있었다.
비교적 값싼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좋았다.
보드게임, 퍼즐, CD.
레이디 가가 CD는 2CD에 1유로였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안 샀는데,
다음 주에 와보니 이미 팔린 후였다. 아쉬웠다.
경력 쌓을 겸 도전했던 세컨드핸드샵 봉사에서는
현지인들이 쓰는 영어도 많이 듣게 되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일이 안 구해진다면
차선책으로 세컨드핸드샵에서 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초기 정착 첫 한 달 정도
매주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만 시간을 내어도
나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무급이지만,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