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페스티벌

by 테일러


코리안 필름 페스티벌


한국에서는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아일랜드의 영화관은 어떨지 궁금했다.


마침 더블린 한국 영화축제가 열렸다.

미리 예약하고 무료로 봤다.


6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한국 영화 5편이 상영됐다.


맨발의 꿈, 두근두근 내 인생, 내가 살인범이다.

그중에서 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예매했다.


이미 두어 번 본 영화였지만,

아일랜드 더블린 영화관 구경할 겸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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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인 라이트하우스 시네마는

시티에서 서쪽으로 20분쯤 떨어진 곳.

전에 피닉스 파크 갈 때 지나쳤던 길 중간에 있었다.


불금이었지만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간이 매표 부스에서 체크인하고 상영관으로 내려갔다.


한국 영화축제 팸플릿을 들고 있어서 따로 티켓 검사는 하지 않았다.

대기하면서 보니 한인들보다는 아시아인이나 타 국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한국 영화 페스티벌이라서 한인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영화관 스크린은 작아 보였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풀 스크린이 되니 괜찮았다.

시트는 정말 편안한 리클라이너 석이었다.

안마의자 같은 편안함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시트가 있으면 좋을 텐데.'



영화는 세 번째로 보는 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울었다.


더블린에 와서는 감정이 풍부해져서

어떤 영화든 보면 눈물샘이 터졌다.


펜팔이 거짓말로 꾸며낸 허구 인물이라는 소식을 듣고

주인공이 느낀 허탈감과 배신감과

아빠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

부모님을 모티브로 쓴 소설을 선물하고 죽는 장면이

깊게 공감됐다.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옆 사람도 후반부에 계속 울어서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서양인이었다.


그분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감동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좌석에 오랫동안 앉아 눈물을 닦았다.

한국인이라는 게 내심 뿌듯해졌다.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가 자랑스러웠다.






블룸스데이


6월 16일은 블룸스데이였다.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더블린에서 일어난 사건 이야기를 다룬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이 된 날.


블룸스데이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닌 행적을 재현하며

작가 조이스를 기리는 날이었다.


더블린 시내에는

1900년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샌디코브라는 마을에서 블룸스데이가 대대적으로 열린다고 들었다.

집에서 버스와 다트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가고 싶었지만, 주말에 밀린 일들을 하다 보니

벌써 오후 4시 반이 되었다.



'시티에라도 가볼까?'



시티로 가다가 집 근처 해롤드 크로스 공원의 포스터를 봤다.

시간도 맞아서 잠시 기다렸다.


해롤드 크로스 공원은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처음 가본 공원이었지만 조용하고 나름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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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30분이 되자

투어 그룹처럼 보이는 한 무리가 등장했다.

그들 중 서너 명은 율리시스 속 의상을 입고 있었다.


빙 둘러싼 가운데에는

젊은 배우 한 명이 눈먼 연기를 하고 있었다.

3분쯤의 모놀로그 같은 연기가 끝났다.


단장처럼 보이는 배우가 말했다.


"이제 다음 장면은 저쪽에서 할 거예요."


총 7개의 장면이 재현됐다.



우리는 율리시스를 따라

공원 근처를 이동하며 연기를 감상했다.


거리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연기는 매 장면이 이머시브 형태였고,

관객과의 거리도 정말 가까웠다. 생동감이 넘쳤다.


아일랜드에서 처음 본 공연이었다.

모든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


'어디서 하는지 몰랐는데,

거리마다 대대적으로 하는구나.'



일 년 동안 아일랜드의 문화를 즐기고 싶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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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페스티벌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3월의 세인트 패트릭데이만 알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그린그린한 나라다.'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 내가 아일랜드에 더욱 호감이 생긴 건

프라이드 퍼레이드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생각보다 더 다채로운 나라였다.

한국에서는 낯설고 생소한 성 소수자 문화 LGBTQ.


나는 좋아하는 배우의 영향으로

성 소수자 문화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이 많았다.


더블린에서도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꽤 크게 열린다는 정보를 듣고

그들의 문화를 즐기러 다녀왔다.


6월 30일 토요일, 더블린에서 열린 프라이드 퍼레이드.

매년 더블린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아일랜드에서 세인트 패트릭데이 다음으로 가장 큰 행사였다.


'퍼레이드'라는 말 그대로

LGBTQ 혹은 지지하는 기업들이 행진하는 긴 행렬이었다.

스티븐 그린 공원에서 모여서 스미스필드 스퀘어에서 끝났다.

나는 구경 삼아서 갔다.


아일랜드 수도에서 열리는 두 번째로 가장 큰 행사인 만큼

퍼레이드 라인을 따라 많은 사람이 모일 것 같았다.

시작 한 시간 전쯤 스티븐 그린 라인에 도착했다.

역시나 셀 수도 없을 만큼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런 문화가 처음이라 수많은 인파에 휩쓸리면서도 정말 신기했다.

더블린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LGBTQ의 상징색인 무지개색 아이템과 코디로 장식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그런 액세서리와 아이템들을 팔기도 했다.

무지개 미니 국기가 갖고 싶었지만, 사지 않았다.


아일랜드 라디오 채널, 테스코 등의 기업에서도

홍보 차원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프라이드 일회용 타투를 해주기도 하고,

바나나, 샌드위치, 사과, 과자, 물 등

프라이드를 즐기며 먹을 음식들을 나눠주기도 했다.


퍼레이드는 2시부터 시작.

혼잡할 것을 대비해 1시 30분쯤 미리 근처 초입 구간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래도 이게 축제의 묘미지.'


그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센스 있는 코스튬을

보고 있으니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


'나도 나의 개성이 담긴 코스튬을 입고 싶다.

내가 이 행렬에 참가한다면 나는 어떤 옷을 준비하고 행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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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행렬을 하는 사람 중에는

실제 LGBT도 있지만 간혹 일반인들도 있었다.

너무나도 긴 그 행렬을 보다가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과 함께 걷다 보면

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행렬 속에서 행렬을 따라 결승까지 한 30분쯤 걸었다.


퍼레이드를 보던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고

끝까지 퍼레이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블린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모두를 위한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면,

피니시 라인의 행사장에서는 LGBT 사람들의 연설과

드랙퀸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보다 더 본격적으로 알짜배기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

퍼레이드가 1부라면 이 행사는 2부 같았다.


나는 그들의 연설을 유심히 들었다.

퍼레이드에는 6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그들은 말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파티'가 아니라고.

그들의 정체성을 비롯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보여주는

하나의 시위이자 LGBT들을 위한 또 하나의 약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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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럴 게

한국만 봐도 LGBTQ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더블린 프라이드 축제에 참여하면서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럽 국가의 축제도 즐기고 싶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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