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자도 몰랐던 내가 인니어를 시작한 계기

by 테일러


우연히 시작된 인연


고백하자면, 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2024년에 처음 마주하기 전까지는.


인도네시아의 '인'자는커녕,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 탓에 '동남아'는 여행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20개의 국가를 여행하면서도 인도네시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라였다.


그런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K-MOVE 기관의 운영자이셨던 지인분의 추천으로 연수에 합류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 시작된 인도네시아어 공부


K-MOVE 프로그램에서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중 취업을 희망하는 국가 한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현지어 교육과 취업을 함께 연계해 주는 구조였기에, 청년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는 꽤 현실적인 기회로 느껴졌다.


연수원에 합류한 뒤 두 나라를 두고 고민하다가, 비교적 희소성이 있고 시장의 규모와 발전 가능성이 큰 인도네시아어를 선택했다. 베트남어의 복잡한 성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도 솔직한 이유였다.


인도네시아어 교육은 베트남 연수원으로 파견된 인도네시아 현지인 선생님의 지도 하에 진행되었다. 짧은 기간 안에 현지어를 익혀 취업까지 연결해야 했기에,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 그대로 전부 '인도네시아어'로만 진행되었다. 그나마 초급 학습자 입장에서 질문은 영어로도 할 수 있었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표정과 손짓, 상황을 따라가야 했다.






제로베이스의 현실


제로베이스로 시작한 나는 초반부터 멘붕이었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어가 외계어처럼 들렸다. 문장은 들리는데 의미가 잡히지 않는 상태가 반복됐다.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기억보다 훨씬 버거웠고, 매일 새로 배우는 100여 개의 단어와 어휘들은 물밀듯이 쌓여갔다. 매일 단어 시험, 매주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시험이 진행되었다. 성적은 현지 취업 준비 시 평가 점수에도 반영이 되었기에 더 긴장감이 돌았다.


하지만, 새로 배우는 것들은 도통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체력도, 집중력도 20대 때와 같을 수는 없었고, 3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맞게 한계가 비교적 빨리 느껴졌다. 동기생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동안,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만 이렇게 느릴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속상한 마음에 울컥했던 날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적지 않았다. 쉬운 마음으로 베트남까지 날아온 것도 아니었지만, 포기하기엔 기회가 아까웠다.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언어를 배울 기회가 내 인생에 또 올까?'


라는 생각이 들자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


단 하나, 다행이라는 점은

이 언어의 문자가 영어의 알파벳과 같은 로마자를 기반으로 하여 발음 기호가 같다는 것이었다.



'읽을 수는 있으니 어떻게든 머릿속에 넣는다면 나도 가망이 아예 없진 않을 것 같은데...'


그때부터 자유 시간도 줄이고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에 잠들기 전까지 내 자신을 악착같이 몰아붙였다. 심지어 언어 공부에는 반복 학습이 좋다는 말에 자주 봐서 눈에 익혀두려고 자기 전에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머리맡에도 단어장을 잘 보이게 붙여두었다.


그 노력 덕분에 점차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중에는 교사분과도 주말마다 만나는 친구가 되면서 낯설게만 느껴지던 이 언어도 익숙해졌고, 동기생들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언어 능력이 늘었다.








끝나지 않은 마음


연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BIPA 1권의 마지막 수업과 함께 두 달 만에 끝났다. 연수 중단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 취업의 기회는 사라졌지만, 진심으로 임했기에 연수가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을 그냥 놓아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독학할 수 있는 교육을 찾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앙도서관에도 인도네시아에 관한 책은 여행 서적뿐이었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공부할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지만, 우연히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과 부산외대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들을 찾아 공부를 계속했다. 그렇게 이어진 인도네시아어 강의는 벌써 2학기 째다.






취미와 공부 사이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는 매주 3일, 하루 2시간씩 화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들었다. 평일에는 문법, 주말 이틀은 현지인 선생님과 공부하는 BIPA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절반의 시간을 학습했으니 취미 생활로 배우는 셈 치고는 나름대로 밀도 있게 공부한 편이었다.


어떻게든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제대로 하고 싶어졌다. '언어' 공부는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니까. 실제로 현지인 교사와 친구가 되면서 말이 트였던 것처럼, 직접 활용할 기회가 더 많다면 실력이 더 쌓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방법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많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음식 전문점에 가면 현지에서 오신 분께 직접 인도네시아어로 주문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가능한 곳은 안산이나 홍대처럼 한정된 지역뿐이었다. 활용할 기회가 있으면 언어 능력이 더 향상될 텐데 영어처럼 한국에서 흔히 쓰는 외국어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었다. 활용할 곳이 없으니 실력도 제자리였다. 답답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바탐 여행 계획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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