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기념, 감정 지도를 만들어보자

간단하지만 특별하게

by 타자기

생일이 다가오면 누구나 특별한 감정을 가진다.


지금 쓰는 글은 내가 올해 처음으로 발견한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이건 이제 앞으로 매해 내 생일의 루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듣게 되길 마련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난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본인의 생일이 엄마의 기일이 사람도 있다.


주위에 고아인 친구들이 2명 있다. 한 친구는 본인의 생일을 모른다. 또 다른 친구는 보육원 앞에 버려질 당시 편지가 있어 생일과 이름은 알고 있지만, 본인이 어떤 식으로 태어났는지는 평생 모를 것이다.


참고로 나는 위험하게 태어난 아이였다.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의 혈압은 220을 넘어섰고, 간호사 마저 패닉에 빠졌었다.


결국 의사는 나를 석션을 통해 나를 꺼내야만 했다. 커다란 통로를 통해 태어난 미숙아.


당신의 탄생 스토리는 무엇인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일이 다가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30살이 넘어갈 무렵부터 그랬던 것 같다. 항상 행복하기만 하던 생일이 더 이상 기쁘지 않게 된 것이.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나만의 생일 보내는 방법을 찾은 첫 해라서 그런 걸까.


한국에 있을 땐 생일이 정신이 없었다. 생일 전주부터 친구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었으니까.


그런데 해외에 살면서는 내 생일을 신경 써주는 친구가 없었다.


외로웠다.


근데 원래 다 그런 거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 친구들과 저절로 멀어지게 마련인데, 나는 거기에 외국으로 오게 되면서 그게 더 가속화된 것일 뿐.


이 외로움은 해외에 살아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이를 먹어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생일이 찾아오고, 나이를 먹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결국 부정적 감정들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찾은 나의 생일 루틴을 소개 보려고 한다.



생일 감정 지도 만들기

우선 첫째로 생일날 제일 가까운 사람과 찜질방을 간다. 인테리어가 예쁜 찜질방을 추천한다. 더운 게 싫은 사람이라면 경관이 좋은 장소를 찾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는 장소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 예쁜 것들이 가득한 장소로 가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편안한 장소를 가야 한다.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고, 후줄근하고 편한 옷을 입어도 되는 장소.


두 번째, 편안한 장소에서 편한 사람과 평소에 하기 어려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에서 오는 그 소중한 분위기. 그게 중요하다. 그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마음을 놓고 생각을 비운다.


세 번째, 그 장소에서 최소한 10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다행히 올해 생일이 주말이라서 이게 가능했는데, 평일이 생일이라면 생일 전 주말에 이런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추천한다. 소중한 사람과 편안한 장소에서 말없이 있는 시간. 이곳에서 생일 감정 지도를 만든다.




<생일 감정 지도> 그 장소에 가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노트를 여러 개 가져간다. 그날 어떤 노트를 쓰고 싶어 질지 모르니까. 평소 좋아하는 노트들을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두 개의 노트를 가져갔다.


하나는 커버가 검은색에 시카고 시티라인이 그려져 있는 노트였고, 다른 하나는 평소 좋아하는 지브리 일러스트가 파스텔 톤으로 그려져 있는 노트였다.


감정 지도를 만드는 방법은 정말 쉽다. 그냥 기록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나는 색깔을 먼저 기록했다. 그리고 그다음엔 소리. 그걸 감정과 연결시켰다.


그냥 보이는 데로 낙서를 하는 기분으로 기록했다.


첫 페이지 첫 줄엔 이렇게 썼다. 15 Mar 2025 보라색 감정, 생일 전야. 투명한 유리 속에 모닥불. 한숨 쉬는 여자. 빨간색 원피스. 예쁜 청바지.


두 번째 페이지 첫 줄엔 이렇게 썼다. 초록색 기분, 생일 전날. 크리스마스 이브. 나무. 향기 없는 가짜 나무. 해먹에 누워서 바람을 느낀다. 따뜻한 바람. 비밀이 있는 듯한 저 사람.


세 번째 페이지 첫 줄엔 이렇게 썼다. 햐안색 기분, 2025.03.15.오후 언제쯤. 길게 서있는 형광등. 파란색 복숭아. 가짜 꽃들. 생화는 없다. 투명한 수영장과 그 안에 들어가는 모델 같은 저 사람. 안전한 유리벽. 심심해. 얘기나 해야지.


그냥 아무말이나 썼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이런 식으로 아무 말이나 썼다. 계속해서.


어느덧 페이지수는 여러 개가 넘어갔다.


그리고 중간중간 함께 간 나의 소중한 사람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나는 이걸 제일 먼저 썼을까, 왜 이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을까.


스스로를 계속 들여다본다.


나는 요즘 괜찮을 걸까.


그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내 상태에 대해 진단하게 된다.


보라색은 깊고 몽환적, 복잡한 감정을 뜻한다. 요즘 혼돈 속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 같다. 초록색은 생명력과 치유 균형을 상징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이런 것을 원한다는 것인가. 하얀색은 비움, 정화,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가 쓴 글에 대해서 판단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배우게 된다.


진단만 제대로 되면 치유되는 건 생각보다 빠르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치유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스스로 쓴 글귀 안에서 힘을 얻고 그동안 고갈되어 왔던 행복감이 빠르게 차오른다.


사실 난 저런 낙서를 하면서 완벽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행복하다.


꽤 괜찮은 생일날 루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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