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내 안의 괴물

아이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고였다

by 타자기

결국 30대 중반, 인공수정을 해보기로 했다. 3번의 시도. 아무도 위로하지도 축하하지도 않았던 결과.


이 시기 나는 남편과 미친 듯이 싸웠다. 우리에겐 한 가지 도저히 협의가 안 되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문제가 또 터졌다. 그 문제는 이사 문제였다. 우리는 서로 살고 싶어 하는 동네가 달랐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한 팀이었다. 싸우는 와중에도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같았다.


그럼에도 3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이제 돌아보면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우울증 증세를 급격히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로 괜찮은 척을 했지만 내면의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안의 괴물은 계속 나에게 속삭였다. “너는 평생 엄마가 되지 못할 거야.” 그 속삭임은 점점 강해졌고 나는 슬픔을 넘어 울분에 가득 차게 되었다.


30대 중반 무렵, 나는 뭘 해도 기쁘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어도, 좋은 곳에 가도.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주변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시동생이 아이를 낳았다. 사촌 동생들과 친구들이 둘째를 낳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주변과 관계를 끊어갔다. 아무런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이런 아이 회피 증상은 가족이나 친구 모임을 넘어, 불특정 다수와의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하루는 남편과 맘먹고 정말 좋은 리조트에 간 적이 있다. 들뜬 마음으로 가서 편히 쉬고 와야지 다짐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도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역시나 슬픔은 나를 덮쳤다.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공원을 좋아하던 내가 공원을 아예 가지 않게 된 무렵이. 여행을 갈 때는 일부러 Adult only 리조트를 예약했다. 그리고 최대한 아이들은 오지 않는 곳으로 둘이서만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그냥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또 우울감과 분노가 생겼다. 하지만 그 시절엔 내가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심적으로 힘드니 몸도 덩달아 약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안 좋아지니 또 정신이 힘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장담컨대 나의 30대 중반 시절은 내 인생의 암흑 같은 시기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주는 단어다. 특히 아이를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여자들에겐 가장 잔인한 단어일 것이다.


그 단어는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 벽에 부딪힐 때마다 분노와 우울, 좌절이 차례로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벽 앞에서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살아남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단어에 흔들리지만, 더 이상 그 단어가 나를 집어삼키도록 두지 않으려 한다.


30대의 중반을 지나며 나는 서서히 다른 단어를 붙잡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그 깨달음이야말로, 내가 긴 시간 괴물과 싸우며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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