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끝없는 터널 속에서

그 어둠 속, 수많은 시간들

by 타자기

늦지 않았다고, 아직도 젊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독이었다.


나는 내 몸에 자신이 없었다.

척추측만으로 늘 뻐근한 허리,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흐트러진 주기. 그런 몸으로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서른여섯의 나는 매번 그 질문 앞에 작아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했다.

“아직 괜찮다.”

“요즘은 의학이 좋아졌잖아.”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그 말들은 나를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마치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마음을 다잡지 않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나를 젊은 산모라 하지 않았다.

진료실에 앉으면 의사의 차가운 목소리로 ‘고령 임신’이라는 도장이 찍혔다. 그 단어가 귀에 맴돌 때마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나는 분명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험관 시술은 차마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인공수정만 세 번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은 건 결과가 아니라 상처뿐이었다. 시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결과를 듣던 그 모든 과정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희망은 점점 작아졌고, 절망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최악이었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차마 시험관은 시도할 수 없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리고 눈물에 잠겼다.


길에서 마주친 아이의 웃음소리에도 가슴이 저려왔고, 조카들을 보기가 두려워 가족 모임조차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점점 피하게 된 나는 철저한 혼자가 되었고, 이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왜일까. 나조차 나를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미워했고, 끝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이 터널 속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빛은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이 오랜 어둠 속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무너졌던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하다.


아직 터널에서 나왔다고 말하기엔 어렵다. 몸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척추측만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 앞에 여전히 흔들리지만, 이제는 안다.

그 단어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글을 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 작은 순간들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아이를 품지 못한 삶이라도, 여전히 살아낼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36살의 나는 지옥 속에 있었지만, 그 무너짐을 지나온 지금의 나는 평안을 안다. 그리고 그 역설이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 언제 이 터널을 빠져 나올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안에서 견딜 힘이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끝이 없어 보여도 분명 이 터널은 언젠가 끝이 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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