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무언가 찾아왔다

나는 그냥 나였다.

by 타자기

몇 년 전 찾아왔던 내 안의 괴물. 그것과는 또 다른 무엇이 나에게 찾아왔다.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좋게 말하면 납득, 나쁘게 말하면 체념. 그저 그런 받아들임. 나는 평생 엄마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지독한 우울증에서 이제 벗어나진 듯한.


참고로 나는 미국에서 15년을 살았어도 새해가 오면 한 살을 먹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내 생일이 3월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축하와 다짐의 계절이지만, 나에게 새해 전야는 언제나 무겁게 다가왔다.


지금까지도 절대 잊지 못할 새해 전야가 있다.

그날은 37살의 내가 맞이하는 새해전야.


3달 뒤 38살이 되는 그런 날.


평소의 나라면 우울감에 휩싸여 그 괴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시간의 쓰나미. 도저히 내가 막을 수 없는.


‘이제 나이를 또 먹겠구나. 3개월 뒤 나는 또.’

그 생각이 무겁게 납덩이처럼 내려앉으며 그 무언가가 나를 저 밑에서 끌어내리고 끌어내리는 그런.


슬프고 화가 나는 사실 중 하나는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었다. 아이를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에겐, 몸과 마음이 더 약해지고 있다는 실감이었다.

그래서 매년 새해 전야는 유독 잔인했다.


해가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새로운 다짐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늘 울었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혹은 침대 속에서 몰래.

아무도 모르게, 새해 다짐 대신 눈물을 흘리며 또 한 살 더 먹는 나를 맞이했다.


만약 그날도 집에만 있었다면 아마 또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미친 듯 새해 전야에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한국에 사는 베프가 LA에 오기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족과 연인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그 자리에서, 나는 울고 또 웃었다.


수많은 어린아이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나는 나만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불빛과 음악, 퍼레이드 속에서 나는 잠시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를 품지 못한 나’가 아니라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에 여러 감정이 뒤섞였고, 결국 또 눈물이 터졌다.


매년 반복되는 새해 전야의 우울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다.

하지만 그 해, 나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괴물은 내 안에 살아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가 찾아온 것도 분명했다.


체념인지, 수용인지 모를 그 마음.

그것은 나를 완전히 무너지게 하지 않고, 어쩌면 천천히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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