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괴물이 태어난 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인생의 바닥을 찍은 것 정도가 아닌 나의 내면에 이상한 괴물이 태어난 날이다.
그날은 분명, 이상한 날이었다.
원래라면 잠깐 스쳐 가야 할 생각이 한나절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는 왜 결혼한 거지. 나는 왜 미국에 온 거지.
눈이 내리던 2월의 어느 날. 나는 무너졌다.
잊고 살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 없는 30대 부부의 삶은 다들 이런 것일까.
때때로 찾아오는 공허함. 그럼에도 그 공허를 이겨내고 시험관 시술까지 감당할 용기는 도무지 찾아오지 않았다.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어 서둘러 결혼했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대책 없이 자연임신으로 귀여운 아이만 갖고 싶어 하는 철없는 소녀.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둘이서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이렇게 끝까지 둘이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중얼거림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그래, 이렇게 둘이서만 사는 것도 괜찮아.’라고 계속 이어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날은 이 중얼거림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급속히 마몰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갑자기 엉엉 울었다. 소파 쿠션을 붙잡고 그냥 오열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제자리로 돌아가던 날들. 나는 눈물을 닦고 세수를 하고 하던 공부를 마저 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병원 정기검진 날. 임신 여부를 묻는 통상적인 질문 앞에서 눈물이 터졌고, 갑자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응급실이었고 의사가 내린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그렇게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우울증 치료는 불면증 치료와 함께 병행됐다.
내가 우울증이라니.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게 살아왔던 나인데. 33살의 2월을 기점으로 나는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 후로 겨울은 내게 특별한 계절이 되었다.
겨울만 되면 그 괴물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추운 날씨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는 핑계와 자기 합리화를 만들어냈고, 몸이 약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쁜 생각이 끝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를 미치게 하는 건 결국 연말과 새해를 견지디 못하는 내 안에 그 괴물이었다.
올해도 엄마가 되지 못했다.
그 하나의 사실의 나를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괴물은 항상 “엄마”라는 단어를 가지고 수많은 생각을 낳게 만들었고 특히 새해 전야는 나에게 가장 괴로운 날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우울감이 밀려왔고, 새해가 되고 내 생일이 있는 3월까지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30대 중반 무렵, 그래서 결심했다. 난임치료를 제대로 해보기로. 그러나 그 길은 결국 내 안의 괴물을 더욱 크게 만드는 길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