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기록하는 화가 에바 알머슨?

지극히 주관적인 행복이란 가치

by 청안

때는 7월 21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바 알머슨 vida' 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도, 전시 포스터를 보니 '아, 이 그림 본 적이 있다. 가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마 스쳐가다 그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외벽에 크게 걸린 전시 포스터와 배너, 그리고 전시장 매표소

코로나 때문인지 관람객이 적은 편이었는데, 전시회를 조용히 보는 걸 즐기는 저로선 사실 굉장히 좋았습니다. 성인이라면 15,000원의 티켓값을 지불하고, 문진표를 작성하여 제출한 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QR코드를 직원분에게 보여드려야 비로소 전시회에 들어갈 수 있는, 대大코로나 시대의 관람객 매너를 알게 되어 얼떨떨했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실감이 나서 입구를 통과해서는 괜히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지정된 포토존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에바 알머슨은 스페인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랑스럽고 유쾌한 화풍으로 일상을 그려내는 화가입니다.

그녀의 이번 전시 타이틀인 'Vida'는 스페인어로 1. 생명 2. 일생 3. 수명이라는 뜻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열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영감, 삶의 조각, 가족어 사전, 내 마음이 말할 때, 자연, 삶의 실타래, 우리, 행복을 찾아서, 행복, 기쁨의 카테고리로 정리된 전시 형태였는데, 작품들이 주제별로 굉장히 잘 분류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아 마치 물건을 알맞은 서랍장 칸에 집어넣은 듯한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분류된 카테고리에서 이미 알 수 있으시겠지만, 그녀는 성공과 명예 같은 과시적 주제가 아니라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 연관된 우리의 공통된 어떤 요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주로 자기 자신, 작가 본인의 가족, 그리고 결혼하여 꾸려진 그녀의 가정을 그립니다.


살면서 누구나 들어보고, 그 앞에선 이해한 척 하지만 절대 와 닿지 않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야.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네가 모르는 거야.'를 이미지화시킨 그녀의 그림이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너무나 직설적이라고도 느껴졌습니다. 가족 그림에서는 꼭 남편에게 기대어있는 아내의 모습을 표현한다든지, 가족끼리의 식사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는 작가 본인의 가족이라고는 하나 아빠, 엄마, 자식 둘. 또는 작가 본인, 남편, 아이 둘, 그리고 강아지. 같이 지속적으로 지극히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이미지를 전달하여 그림을 사고, 보는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춰진, 소위 말해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작품을 볼 때는 '그림이 따뜻해서 좋다. 역시 세계적으로 알려질 만하다.'라는 생각만 있었지만,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던 모든 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마치 살색을 살구색이 아닌, 끝까지 살색으로 부르는 사람의 그림을 본 듯한 기분이 서서히 밀려왔습니다.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설치 미술로 만든 작품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런 교과서적인 이미지들이 시대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요즘 '젠더 감수성'이라는 많은 이들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사고 체계가 생겨났는데, 소위 말해 어디서 여자가, 남자는 ~하면 안 돼, 여자는 그렇게까지 하기 힘들어, 남자가 그러면 안되지 등의 성 차별적 언어와 행동이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용납되지 않는 사회로 변형되고 있으며, 젠더 감수성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낙오되는 일이 실제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가정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또렷하게 나눠져 있는 그녀의 그림을 보며 불편함이 밀려왔습니다. 예를 들어 왜 여자 아이는 로봇이 아닌 꼭 곰인형을 쥐고 엄마의 손을 잡고 있으며, 남자아이는 곰인형이 아닌 로봇, 자동차 장난감 등을 손에 쥐고 행복해하는 모습이어야 할까요? 가족사진처럼 구성된 그림에서는 남편의 위치가 그림의 중심으로 잡혀 있고, 아내와 아이들은 가장(家長) 옆에 기대어 붙어 있는 존재들처럼 그려진 모습이 앞으로 변화될 사회의 모습과 조금 동떨어져 보였습니다.


오늘날은 옛날보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가정이 존재하고, 그러므로 거기서 오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미지화시키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입니다. 천편일률적으로 쟤네 집은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누나가 한 명 있고, 아들이 막내인데 작은 강아지도 한 마리 키워. 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저 여자는 아빠가 둘이래. 근데 쟤는 여자인데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와 가정을 꾸렸는데 그 여자는 남자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여자래. 둘은 아이를 입양했는데, 걔가 남자아이이고 남자를 사랑한대. 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고,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변화입니다.

누군가들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이 변화로 인해 사랑과 가정, 행복의 모습은 변해갈 것이며, 이에 도태되지 않고 현대의 사고방식을 지속적으로 뇌에 업데이트시켜 작품에 잘 담아내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Vida의 전시장 내부 모습, 출구이자 아트샵 정문.

에바 알머슨의 부산 전시회 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바 알머슨의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그녀의 작품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입니다. 코로나로 바뀐 일상에 적응하느라 지친 저를 작품들이 힐링해주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아서, 누군가가 어땠어?라고 물어본다면 그 전시 가봤으면 좋겠어. 좋더라.라고 추천할 마음이 드는 전시입니다. 심지어 저는 기념품샵에서 그녀의 부산 전시 도록도 구매하였는데, 책상 위에 두고 펼쳐 보며 '그림 참 좋다.'를 외칩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마치 단비처럼 관람객의 마음을 적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비. 내가 맞아도 되는 단비일까? 하는 작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