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를 위한 안식처
-코리아 타임즈 'Paris aquarium offers haven for unwanted goldfish'를 읽고-
파리에서 제일 큰 수족관 The Aquarium de Paris에는 약 600마리의 금붕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키우던 금붕어들로 더 이상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 아래 수족관에 맡겨진다고 한다. 수족관은 이 시스템을 2년 전 구축해놓은 상태고, 의학적인 검진을 포함하여 큰 탱크 안에서 살게 해주는 등 금붕어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기사에서 실제 이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금붕어는 작은 용기에 담겨 있었으니 이 수족관이 나을 거예요. 변기에 내려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죠."라는 입장을 보였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역겨움을 느꼈다.
첫째, The Aquarium de Paris라는 수족 관측은 금붕어를 위하는 척 사실은 물고기 구입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시할 물고기들을 얻으며, 자신들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며 신문에 홍보도 하면서 실상은 온갖 물고기들을 가둬놓은 채 전시를 하며 돈을 버는 입장이고,
둘째, 변기에 내려버리는 것, 좁은 어항보다는 넓은 아쿠아리움이 낫다며 수족관 탱크 안에 물고기를 넣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무책임한 물고기 구입자들의 마음은 무엇이며,
셋째,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으로 많은 물고기들을 키웠고, 결국 다 죽여 놓고선 이런 기사를 읽고 역겨움을 느끼는 나 때문이다.
모두 다 위선적이라고 느꼈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 존재길래 이토록 함부로 생명을 대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있는 걸까 의문이 들어 아무 생각 없이 대했던 금붕어, 더 넓혀 관상어의 정의와 관상어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관상어는 왜 존재하는 걸까? 사전을 찾아봤다.
관상어 aquarium fishes, 觀賞魚: 수조나 연못에 사육하면서 보고 즐기기 위한 물고기.
잔인하기 짝이 없는 뜻이다. 관상어의 존재 이유는 인간에게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정말 많은 죄를 지으며,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산다고 생각한다. 같은 인간끼리 피해를 입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잘 살고 있던 물고기를 관상어로 개량하여 판매하고, 예쁘다며 키우다가 '난 좋은 주인이 될 수 없어 잘 가.' 하며 마음대로 버려버리는 우월감의 원천은 대체 어디일까?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상태에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민어라는 물고기가 얼마나 맛있는 생선인지 찬양하는 패널들의 대화를 들었다. 어떤 양념에 찍어 먹으면 맛있고, 어디서 많이 잡히며 크기는 어느 정도인데 이게 그렇게 고소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입에 침이 고였다. 그 순간, 관상어와 식용 물고기는 어떤 생명의 경중의 차이가 있는 것이며, 맛있다는 물고기 얘기를 들으니 입에 침이 고인 나는 수족관에 키우던 물고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일까? 깊은 의문이 들었다.
The Aquarium de Paris를 제외한 다른 수족관들은 이 시스템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며 비판하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그 사람들도 생선을 먹고살 것이다. 나도 생선 얘기에 침이 고이면서 물고기를 보호한다는 수족관 입장을 비판한다. 내게 동물들. 특히 식용 동물들에 대한 생각은 해도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