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자기소개

by 청안

A

좋은 오후입니다.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됐다니 믿기지 않아요. 오, 세상에.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 연주라니. 제 결혼식 때 행진곡으로 나왔던 곡이에요. 아, 참. 제 이름은 A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제빵사예요. 한국에서 왔어요. 서울에 살아요. 저는 외롭지 않아요. 목마르지 않아요. 딸이 두 명 있어요. 파스타를 좋아해요. 요리를 잘 못해요. 아침 9시에 수영하러 가요. 저녁에 차를 마셔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기타는 치지 못해요. 저 오늘 어때 보여요? 여러분은 아름다워 보여요.


아름다운 당신들은 어디서 왔나요? 어디서 왔길래 그렇게 빛이 나는가요?

나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 형편없는 요리 실력으로 만든 제 가지 그라탱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표정으로 먹어 주세요. 그러면요, 제가 조금은 기운이 날 것 같아서요.


나는 공원의 오래된 벤치에 누워 별을 세어 봐요. 방치되어 다 벗겨진 나무 덩어리에 몸을 뉘이면 그 덩어리가 마치 나 같아 눈물이 나요. 나도 꽤나 까슬거리거든요. 더 이상 타인의 어떤 욕구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내 두 손은 부드러운 빵 반죽과 대비되어 더 처참해요. 반짝이는 별을 하나, 둘씩 세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내 인생에 별처럼 반짝이던 때가 있었을까요? 당신들이 나에게 찬사의 말을 던져 준다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B

크루즈의 일꾼인 B는 대걸레로 연회홀을 닦다가 A의 자기소개를 듣게 되었다.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온전한 그의 귀가 그녀의 말을 듣게 만들었다. B는 재빨리 본인의 처지를 되돌아보았다. 두 번의 결혼 실패, 등 돌린 자녀들. 두 손에 쥐어진 것은 물이 질질 새는 갈색 양동이와 랍스터의 살점이 붙은 회색 대걸레. 저 여자는 아침마다 락스 냄새가 나는 물에서 자유로이 유영하고 부드러운 빵 반죽을 만진다. 게다가 두 딸의 시선을 받고 그라탱을 만들 줄 안다. A는 그에게 황족처럼 보였다. B는 대서양 한복판에 몸을 던지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대신 바닥 틈새에 낀 케첩 범벅이 된 감자튀김을 꺼냈다. 이번 달 양육비를 보내면, 적어도 막내딸만은 그의 눈을 바라봐 줄 것이다.


C

랍스터 C는 다른 랍스터들과 함께 수족관에 갇혀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바다를 헤엄치던 C는 어부의 그물에 걸린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집게발은 산산조각 났고, 가족 상봉은 천국에서 이뤄질 것이다. 열에 익어 빨갛게 변한 채 접시에 오른 가족들의 시체가 보인다. 눈앞의 사람들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화려한 춤을 춘다. 구둣발 소리가 어지럽게 울린다.


미간을 깊게 찌푸린 한 남자가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어머니의 살점을 치운다. 어머니, 제가 저 사람이었다면 어머니를 이 잔혹한 장면에서 구출할 수 있었을까요? 통탄스럽습니다. 다음 저녁 만찬은 내일이라는 요리사들의 외침이 들린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이여.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낙원에는 그물도, 어부도, 대걸레도 없고, 오직 푸른빛이 출렁거리는 공간만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못나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