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등장인물
A — 지쳐 있고 과민함. 말은 길고 호흡은 짧다.
B — 냉정하고 말수가 적다. 칼날 같은 문장으로만 말한다.
무대
카페 한쪽, 늦은 오후. 바깥은 흐리다. 커피 두 잔. 휴대폰 하나.
불은 낮고, 침묵이 길다. 음악은 없다.
장면 1
(잠깐의 정적. 'A'가 먼저 입을 연다.)
A
들어봐. 나 진짜 너무 힘들어.
사실 나… 그 남자, 1년 동안 혼자 마음에 품고 있었어.
그가 스쳐가기만 해도 가슴이 떨려. 온몸이 긴장돼.
그 남자-나 좋아하는 건 아닐까? 저번에 나를 위해 문을 열어줬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래서… 말을 걸어오길 기다렸지. 아직까지 아무 신호가 없어.
나는 뒷모습만 봐. 그런데도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그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망가져. 아무것도 집중이 안 돼.
혹시-다른 여자가 그 사람 곁을 차지하면? 끔찍해.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기엔… 나는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 나를 여자로 봐주겠어?
작은 어떤 것이라도 시도할 용기? 없어. 하나도.
그냥… 그를 환상으로 남겨두자, 이런 생각도 해.
그게 내 삶을 더 윤택하게 하지 않을까? 그의 실체를 알게 되면, 내 환상은 깨질 거야.
이 시궁창 같은 삶이, 더 실감 나겠지.
그는 나에게 유혹당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가만히 있을래. … 그래도, 그에게 안기고 싶어.
(침묵. 'B'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B
야. 네 문제가 뭔지 알아?
A
… 말해봐.
B
넌 뭐가 됐든, 두려움을 방패 삼아 시도하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사람 문제만 봐도 그래.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마음을 얻고 싶다-그렇지?
거절당할까 봐 무섭다-좋아. 그럼 식사 제안이라도 해.
그것도 싫다? 그럼 평생 뒷모습만 바라보다 늙어 죽어.
그 사람, 매력적이다. 금방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
아, 그건 질투 나서 싫다? 알아.
A
그만해.
B
아니. 내 말 안 끝났어.
넌… 정말 구제불능이다.
나, 너랑 말하기 싫다. 그래서—앞으로 안 하려고.
A
(웃듯) 그렇게까지?
B
어. 너랑 있으면, 너의 비겁함이 옮을 것 같아.
세상에 역병보다 무서운 게 있거든. 비겁함의 전염.
넌 지금 그걸, 나에게 저지르고 있어.
('A'가 시선을 떨군다. 손이 가볍게 떨린다.)
A
내 말이… 너무 길었나 봐.
B
아니. 길어서가 아니고, 비겁해서야.
네가 '환상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그러면 그렇게 살아. 계속.
A
계속…?
B
그래.
꿈에서만 그를 가져.
꿈에서만 그에게 안겨.
꿈에서만 달콤한 말을 들어.
그리고-현실에서 봐.
그가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그 여자와 가정을 꾸리고,
그를 닮은 아기의 얼굴을-네 눈으로, 직접 봐.
A
너 정말 잔인하다.
B
글쎄.
그게 네가 앞으로 치를 비겁함의 죗값이야.
(잠시. 두 사람의 숨소리만.)
A
… 나는 무서워.
거절, 빈자리, 내 얼굴, 내 목소리-모두가.
B
변명이 거창하네.
한 가지. 아주 작은 것부터 해.
“안녕하세요.”
그다음-“커피 한 잔, 괜찮으세요?”
이 두 문장. 못 하면, 포기해.
포기할 거면, 조용히 포기해. 남 탓 말고. 환상 탓도 말고.
그리고-다시 말하지만-잘 가. 난 내 삶이 소중해서.
(B가 컵을 비운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멈춘다.)
B
마지막으로. 네가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책임 없는 안전. 그건 사랑의 반대야.
('B' 퇴장. 문이 닫힌다. 카페는 조용하다.)
장면 2
('A'혼자 남는다.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꺼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A
(아주 작게)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괜찮으세요…?
(멈춘다. 고개를 든다. 관객을 본다.)
역시 나는 못 해.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