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인간의 생존 조건

안 똑똑한데, 항상 똑똑해야 한다

by 청안

파워 다이내믹에 대해서 아무래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부딪히고 합쳐지는 기운을 느낀다. 그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역시 스트레스는 받는다. 어떤 일이든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일은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나는 터놓고 교류할 곳이 없다. 지역사회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외딴섬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라서 공원 벤치에 몇 시간씩 누워 있기도 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도 해봤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변화가 빨리 일어나기도 했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아서 힘들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나 진짜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절 청년회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계속 혼자일 것 같았고,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다. 절에 가서도 많은 위로를 얻을 수는 없었다. 기대치가 높아서인 것 같다. 내가 다니는 절이 대형 사찰이라 그런지 여기서도 명확히 파워 다이내믹이 존재한다. 간접적으로 임원 추천을 받아서 간접적으로 거절했다. 여기서도 일하면 나는 진짜 쉴 곳이 없다. 그래도 법회에서 스님들이 “모든 것은 다 형태가 없으며, 집착을 버려야 하고, 어차피 누구든 죽는다”라는 큰 개념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그래, 내가 나를 받아줄 누군가를 찾는 행동에 집착하고 있다. 어차피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지금 겪는 모든 일들은 사실 굉장히 작은 일일 것이다.’라는 잠시간의 깨달음을 얻는 게 절에 가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나약하여, 절 밖으로 나오면 눈앞의 감정과 문제에 마음과 몸이 구속된다. 내 경우에는 특히 또래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과의 솔직한 대화가 불가능하고, 내가 겪는 일들을 지인들에게 자세하게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직함이 많아질수록 더 외로워진다.


남자친구를 만들라는 조언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 나는 할 말이 이것밖에 없다.

“다들 저 기 세다고 도망가요.”

솔직히 남자친구가 생긴다 한들 그 사람을 믿지도 못하겠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과연 내 옆에서 버틸 남성이 있을까? 최근에는 나보고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직업군을 권하시는 분들도 생겼다. 그런데 그런 지위를 가지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걸까? 사회적 성공과 행복감을 느끼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직업군은 정말 한없이 외로울 것이다.


가끔 부모님께 “나를 회사에서 30년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낳았어야지, 이게 뭐야.”

라고 불평하면,

“너는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통제가 안 됐어.”

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시절, 나를 통제할 수 없음이 너무 분하셔서 한참 울고 나서는 포기하셨다고 했다. 애초에 나를 만드신 분들이 회사에서의 성취를 기반으로 살고 계신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침대에서 쉬고 있으면

“너 아직 여유가 있네. 일 더 벌여라.”라는 조언(잔소리)을 듣는다.


나는 활동을 하면서도 튀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좀 튀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조금 희석되기는 했다. 그래도 튄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 적정선을 지키는 게 굉장히 힘들다. 엄청나게 세밀한 조정이 필요해서 감각을 다 깨우고 있느라 피로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래야 살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새로 다니게 된 영어 학원에서는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 이름은 몰라도 내 이름을 외우셔서 계속 호명된다. 나는 조용히 수업만 들었다. 이런 상황이 싫어서 맨 뒤 구석에도 있어 봤다. 이 현상은 어딜 가나 반복돼서 포기했는데도, 매번 마주할 때마다 ‘와, 또 반복인가.’라는 감상이 든다.


이렇게 튀면 제일 싫은 점은, 항상 똑똑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똑똑하고 튀는 사람에게는 인정을, 우매하고 튀는 사람에게는 낙인을 찍는다. 거기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상황 대처에 대한 경험치도 부족하다.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도 자기 평가와 비판이 배경음악처럼 돌아간다. 어쩌면 내가 내 나이와 성별에 나를 가둬 두는 느낌도 든다. 매번 나를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야 버티기도 한다.


많은 분들을 만나 보며, 실제로 큰 꿈이나 목표를 가진 분들도 뵈었다. 나도 차라리 달성하고 싶은 도달점이 있으면 이 모든 게 더 버틸 만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까? 그럼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외로워질 텐데, 내가 그 길을 버틸 수 있을지, 혹은 원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성격과 성향이 살아남는 방법은 그런 길, 혹은 비슷한 결의 길을 걷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여서 암담하다.


세상과 교류하고 싶어 시작한 소셜미디어에는 내 근황을 기록한다. 기록 목적과 포트폴리오 목적이 동시에 있다. 하지만 굉장히 단편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범위의 장면만 잘라 편집한 것이라 1차원적이다. 브런치 플랫폼도 5% 정도만 노출한다고 생각한다. 글이라도 써서 풀고 싶어서 올린다.


결론은, 이렇게 태어나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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