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세상이 이런가요?

퇴사 이후, 각성과 선택에 관한 기록

by 청안

꿈에 전 회사 사람들이 나왔다. 어제 나는 굉장히 바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는데, 왜 꿈에 그들이 등장했을까? 꿈에서 “네가 어디까지 갈 거고, 뭘 할지 알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다.

아직도 매일매일 전 회사가 떠오른다.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왜 이런 식으로 인사위원회가 마무리됐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내게 K가, “아예 고소를 하든지 뭘 하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에, 에,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은 순간이 되풀이된다. 나는 CU 앞을 지나고 있었다. 녹음본을 재생하면 한동안 침대에 누워버릴 것 같다. K와의 통화를 마치고 노무사님에게 전화해 상황을 공유했었다. 돌 볼라드 위에 올라가 회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노무사님께 “노무사님, 원래 세상이 이런가요?”라고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들 계속 싸우시다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십니다. 빨리 그곳에서 나오세요. 그리고 새 삶을 사세요.”라는 답을 들었다.


위로금을 받는 절차도 있었다.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나는 이 돈이 필요 없다. 나는 조직에 상흔을 입히는 정도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다시 되풀이되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존망을 언급할 세기가 아니라면, 흠집을 내는 정도에는 관심이 없다. 당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가해자의 가족이 위독한 상황임을 인지했었다. 이 사실을 부모님과 공유하니, 목숨과 관련되는 일에 절대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도 동의해서 더 끌고 가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 가족이 유명을 달리하셨음을 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선택함에 있어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원래 세상이 이런가요?”라고 묻는 순간이 나에게 각성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수의 “너, K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느냐”라는 말도 큰 몫을 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세상은 무서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복종을 하는구나. 나는 무력해. 그럼 나는 힘을 가져야겠다. 나를 방어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지. 어떤 방법일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퇴사 전에는 입당을 할 결심을 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자격을 갖추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의 민원을 넘어 구조 자체에 접근할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음에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정도로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보다 심한 일을 겪고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실제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을 겪은 아는 동생은 1년 넘게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가해자와 옷차림이 비슷한 사람만 봐도 괴로워져 외출이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다. 구멍이 난 제도와 구조를 보강하면 피해자들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를 여러 번 가격하다 보면 결국 바위도 반응하게 되어 있다. 반응하지 않으면… 탱크를 끌어와서 바위를 밀어버리면 된다.


영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일개 사원이었던 내가 어떻게 당원이 될지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상당히 비현실적이었으나,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힘을 쓰다가 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퇴사했다.

퇴사하고 일주일쯤 후에는 아파트 동대표에 출마했다. 작성했던 출마문에는 큰 사회적 역할을 추구하고자 이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제 동기이지만, 아파트 공동체 일부터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계기를 솔직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대 초반 동대표는 인터넷 기사가 날 정도로 흔하지 않기도 하고, 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확신이 없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실 안 될 줄 알았는데, 반대표 없이 모두 동의해 주셔서 감사했다. 이제는 저 구조에 입장하는 티켓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투하되는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버티며 즐기려고 노력한다.


MBC 〈100분 토론〉 시민논객을 신청하고 활동한 이유는 내 정치색을 알고 싶어서였다. 진보색을 띤 방송이지만 보수 측의 의견도 들을 수 있어서 궁금했다. 방송에서 질문하는 건 기록으로 남게 되므로, 정치색이 드러나지 않는 문화 관련 질문 하나만 하고 조용히 들었다. 국회의원과 한 화면에 담길 수 있는 순간은 매력적이었으나, 후회하는 장면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질문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 시기가 겹친 시민논객 활동이었기에, 보수 진영이 공격당하는 장면이 계속 연출됐다. 특히 카메라가 언제 시민논객석을 비출지 모르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건에 대해 신랄한 질문이나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무표정으로 들었다. 그 외에는 자유롭게 들었다. 또한 시민논객 중에 정당인이 있어서 신기했다.


결론은? 그래도 나는 정치색을 모르겠다.

나는 그냥 행복한 사람들이 많고, 불행한 사람들이 줄어든 상태의 사회가 당연했으면 좋겠다. 싸우지 말고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다 같이 잘 살자는 개념과 그것을 이룩하는 데 각자가 그리는 청사진이 달라서 갈등이 일어난다는 정도까지는 인지했다. 갈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공적 단체 중에는 정당 소속자일 경우 지원조차 할 수 없는 단체들이 있다. 나는 내 색이 생기기 전까지 할 수 있는 활동들에 도전해야 한다. 이러다가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그만둘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일직선이 아닌 곡선 형태의 인생으로 진입한 이상, 올라감과 떨어짐에 대해 해탈하지 않으면 결국 나를 망가뜨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뭘 하든, 안 하든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은 직책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된 사람처럼 산다. 세상에서 무서운 건 나 자신밖에 없다. 언제까지 나의 에너지가 지속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삶은 생각대로 살아진다는 말처럼, 퇴사할 때의 생각처럼 삶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초심과 순수함을 잃게 되면 나는 얼마나 추해질까?

나를 잘 챙겨야겠다. 정직한 욕구에 충실해야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크레이프 조각 케이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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