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불평만 쓰기 싫어서
브런치에 내 감정을 담다 보니, 매번 불평하는 글을 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장점에 대해 기록해 보려고 한다.
짧지만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은, 사지가 멀쩡한 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신호등을 건너는 일이란 목숨이 걸린 행동이 될 수 있다. 나는 신호등을 잘 건널 수 있다.
나는 홍어, 산낙지를 제외하면 다 잘 먹는다. 물론 원숭이 뇌, 귀뚜라미 튀김 같은 극단적인 음식들은 빼놓았다. 나는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감상도 솔직히 이해가 하나도 안 됐다. 영국에서 길거리 1파운드 샌드위치나 감자 요리도 맛있었고,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은 더 맛있었다. 레바논이나 인도 음식도 정기적으로 잘 먹었다. 중국 현지 음식도 생선찜, 향신료 가득한 음식들을 잘 먹는다. 그래서 내가 “맛없어서 못 먹겠다”는 평을 하면, 내 주변 누구도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성격이 엄청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평을 받는데, 음식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거나 잘 먹느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내가 먹으려고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못 먹는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내서 가족들에게 먹이기도 미안하다. “내가 갈비탕 만들어주면 어떨 것 같아?”라고 제안하면 가족들이 제발 만들지 말라고 부탁한다. 나한테 요리 교실 강습비를 후원해 주면 반찬을 만들어 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가족 그 누구도 내 손으로 만든 요리를 원하지 않는다. 홈베이킹을 해보고 싶어서 스콘을 만들었는데,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서 꾸역꾸역 먹다가 포기했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송편을 만들었었다. 송편을 빚어서 찜기에 쪘는데 하나도 안 익었었다. 반죽 그대로도 맛있길래 반죽 상태의 송편을 몇십 개 다 먹었다. 소가 고소해서 그랬는지, 반죽이어도 맛있었다. 배탈은 안 났다.
써놓고 보니 내 장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나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자주 하는 편이다. 급을 나눈다기보다는, 내 상태·환경·내가 가진 지식의 수준 정도를 나열해 놓고 “역시 우물 안 개구리다”라는 평을 내린다. 성취를 해도 1분 정도 기쁘고, 1분 이후로는 “그래서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뭘 공부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지?”라는 계획을 세운다.
이러다 보니 자만은 줄어드는데, 성취에 대한 행복도가 낮은 게 단점이다. 내 마음이 변하면 주변 사람들이 가장 빨리 눈치챌 것이므로, 어쩌면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건 내가 학창 시절에 발현됐어야 하는데, 성인이 돼서야 발현돼서 아쉽다. 내 학습 효율은 선생님들의 칭찬 빈도수에 달려 있다. 나는 상당히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스승의 칭찬은 예외가 안 된다.
다 포기하고 누워 있고 싶을 때마다 고양이를 보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다. 내가 부양하는 가족은 없지만, 고양이는 나의 의지로 데려온 내 가족이다. 보호자로서 의지가 안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내 정보에 대해 잘 드러내지 않는다. SNS는 편집된 인터넷 자아를 드러내는 공간이라 예외다. 2~3년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유학 다녀온 걸 말하지 않다가, 대화 주제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만이 되는 수준까지 오면 그때 말한다. 드러내지 말라고 교육받아서 세뇌된 것 같다. 요즘에는 그래도 예전보다는 말하고 다닌다. “너는 어떤 방면으로는 쿨한데, 어떤 방면으로는 선이 너무 확실해서 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듣는다.
상대방의 배경이나 직책이 어떻게 됐든 모두에게 똑같이 대한다. 나는 나이가 아주 어린 분들에게도 존댓말과 90도 인사를 한다. 어린이라고 해도 반말은 합의되지 않았다면 하면 안 된다. 다만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거울이 돼서 말투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서 보여준다.
나는 법적 조건(연령, 주소 등)이 충족되면 “내가 될까?”가 아니라 “나도 되네” 하고 바로 문을 두드린다. 기준은 가슴이 뛰는가, 뛰지 않는가다. 가슴이 뛰면 일단 시도하고, 안 되면 잠시 슬퍼하다가 “내가 이런 것도 시도했다니 굉장히 신기했어” 하고 넘긴다.
가족들도 도움이 된다. “나 이거 할까?” 물어보면, “인생은 어차피 지르는 거야. 자격 같은 거 혼자 따지지 마. 질러야 일이 생겨.”라고 응원해 준다.
“그거 잘 안 됐어.”라고 하면, “그게 끝이 아니잖아. 부족한 걸 알았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정보도 얻고 관련되는 사람도 알게 됐으니 보충해서 시도하면 언젠가 뚫리겠지. 어쩌면 안 된 게 다른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을 벌어준 걸 수도 있어. 다시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라는 말을 해준다.
잘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집단 같다.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건, 모두에게 하나의 목표를 심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일이다. 제일 재미없는 건 나 혼자 성취를 이루는 일이다. 이건 자격증 공부나 각종 활동, 사모임 등에 다 적용된다. 나는 이유나 목적이 없는 모임을 운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라는 목표에 관심이 있는 5~6명을 모아서 단기간 프로젝트를 돌리고, 목표를 달성하면 해체한다. 그 뒤 B라는 목표가 생기면 다시 사람을 모으고,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달린다. 규모나 운영 기간은 목표에 따라 다르다. 내가 강제적으로 이끈다기보다는 기름을 주입하는 역할을 하며, 계속 공동체와 목표 의식을 확립시킨다. 생각해 보면 이것만큼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 없다. 먹고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고, 지금도 넘기고 있다.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일단 나는 아줌마로 불리는 연령대가 되었고, 그 점이 꽤나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