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위에서 연습한 발표와, 추천으로 시작된 역할
제가 도전해도 될까요?
나는 시 산하 위원회의 분과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나는 부위원장이 되는 과정에서 ‘추천’이라는 제도를 처음 접했는데,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자세한 내부 사정은 공유할 수 없지만, 첫 번째 회의에서 ‘위원장 및 부위원장 선출’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뛰었다. 함께하실 분들의 다양한 이력 사항으로 인해 기가 죽었었는데, ‘시켜주신다면 나도 잘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시도해 봤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나는 그 당시 위원이라는 역할을 수행한 지 두 달 차였고, 내가 최연소자인데 하고 싶다고 말씀드려서 투표에 붙여지는 게 ‘옳은’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트레이너 선생님과 가족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께는 “선생님, 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 돼서 창피함이 생길 수 있어도 도전하실 건가요?”라고 여쭤봤다.
선생님은 나와 MBTI가 같기도 하고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저는 일단 도전해 볼 거고요. 안 되면 제가 부족한 걸 알게 될 거고, 창피함은 잠시 아닌가요?”라고 답해주셨고, 가족들은 언제나와 같이 “일단 해라”라고 조언을 줬다.
자전거 위에서 도모하는 일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 당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마문을 쓰고 외웠다. 동대표 출마 당시에는 공용 복도 및 엘리베이터에 내 출마문이 게시됐던 터라, 내 입으로 그 말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투표가 회의 도중 발생하는 일이라 말로 하는 설득이 필요했다.
톤과 목소리 음량, 그리고 입에 붙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을 계속 수정해야 했기에 집에서 준비하기에는 민망했다. 그래서 대본을 완성하고 외웠을 때 자전거를 대여해 타기 시작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알고 있어서 자전거를 타며 발표를 연습했다. 소수였지만 지나친 분들 중에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발표를 준비하는 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기에, 늦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준비와 스트레스 해소를 동시에 노렸다.
새로운 경험, 추천
첫 번째 회의 당일이 되었다. 자기소개 및 안건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호선이 시작됐다. 여기서 참 신기한 과정이 있었다. 후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입장을 표명하는 게 아니라, 추천을 받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날 추천해 주시지 않을 테니 나는 나중에 손을 들자’라고 생각하던 때, 한 분이 나를 추천하셨다. 나의 언행을 보니 잘할 것 같아서 맡아줬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목례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어떻게 초면에 나를 추천해 주시지? 진짜 감사한 분이다. 그리고 말할 거 생각 안 해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였다.
후보자들이 추려지자 바로 투표가 시작되려 했고, 나는 손을 들고 건의를 했다. “혹시 가능하다면 제가 저를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 동의를 해주셔서 발표를 시작했다. 바로 투표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셔야 임기 동안 해당 직책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최연소자가 그런 직책을 맡는 것에 대해 납득이 되셔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선은 다르다
<100분 토론> 시민논객 활동을 하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패널 분들의 말솜씨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패널 분들의 직업군을
1. 지역구 국회의원
2. 비례대표 국회의원
3. 교수, 기자, 변호사, 평론가
4. 시민운동가
로 나눠 바라봤다.
나는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분들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오시자마자 모든 분들께 90도로 인사하셨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인보다 한참 어린 분들에게도 90도로 인사를 하신 분도 계셨다. 몸을 너무 많이 굽히셔서 민망할 정도였다.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다른 시민논객 분께서 “선출직은 유권자가 왕이라서 어딜 가서든 몸을 굽히는 게 옳은 태도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국회의원분은 3선이셨다. 그래서 ‘역시 3선은 다르다’는 결론을 지었다.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로 올린 결과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행사하는 모든 권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마음이 바뀌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절에서 절을 하다 보니 몸을 숙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나도 어딜 가든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회의 당일, <100분 토론>에서 본 패널 분들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 했다.
잘 모르겠으면, 따라 합시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90도로 인사했다. 앞에 계신 분들은 표를 가진 분들이자, 만약 내가 선출된다면 모셔야 할 분들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향이 어떤지, 그리고 리더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드렸다. 발표를 끝낸 후에도 90도로 인사했다.
‘이거 90도가 아니라 코가 바닥에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90도에 맞춰 굽혀야겠다고 알아차렸다. 발표 후 여러 가지 내부 사항이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나는 분과 부위원장이 되었다. 나를 추천해 주신 분께 개인적으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역할에 맞는 행동을 보여드리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 그것에 집중하며 임하고 있다. 사실 그날 나를 보고 무엇을 느끼셨는지 자세히 여쭤보고 싶지만 참고 있다.
기분이 좋아져요
‘추천’이란 뭘까. 사계절을 함께 보내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조금 알게 된다고 하지만, 이런 공적 단체에서는 원활한 운영을 위해 초면에 투표를 진행한다. 후에 이어진 회의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투표가 있었다. 그때는 나도 그 직책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분을 추천 이유를 언급하며 추천했다. 내가 원했던 결과도 따라왔다. 그 순간 느낀 건, 어쩌면 추천을 받는 사람보다 추천을 하는 사람이 더 뿌듯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저에게 내리시는 총평이
나를 내놓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나보다 그 역할에 더 적합한 사람이 계셨겠구나. 그렇다면 공동체를 위해서는 내가 되지 않은 게 더 맞는 방향이다’라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도 필수다. 회의에서 명패를 볼 때마다, 늦여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나, 바퀴를 열심히 굴리며 아파트 공사판 옆에서 포부를 크게 연습하던 내가 떠오른다.
훗날 임기가 끝났을 때, 나를 떠올리시며 ‘그 사람, 괜찮았어’라는 생각을 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