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아카이브_동해
동해도 젊은 작가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책방을 운영하는 독립책방들이 늘고 있다.
이들 책방의 매력은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프로그램 개발 등이다. 국내 KTX역 중에서 사계절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찻길, 동해행 KTX '동해역' 앞에 자리 잡은 ‘책방 달토끼‘를 방문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두 개의 전시, 랜덤쇼핑을 좋아하는 젊은 층들을 위한 팝콘 랜덤 포장, 전시공간 구성, 등을 보면서 도시재생이 가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책방지기님의 안내와 노란 냉장고였다. 순무와 시리얼 전시 소개를 안내받는 순간 책방지기는 노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노란 냉장고 속에는 아이스크림 사이로 시리얼 대신 그림책 순무 시리얼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야... 저 책은 시원하겠다. 동해시 송정 동해역 앞 작은 책방 안, '순무와 시리얼'의 전시는 그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무심한 듯 기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책방지기는 '냉장고는 공간활용으로 시도 했으며, 책의 주인공은 매일 아침 여동생을 위해 시리얼을 골라주는 고양이 시리얼이다.' 라며, 손에 수세미로 만든 순무를 들고 전시회에 작가가 직접 보내준 순무 캐릭터라며 함께 전시된다고 한다
3월 27일 창비에서 출간된 에토프 작가의 '순무와 시리얼'은 제목만큼이나 낯설고 궁금한 그림책이다. 먹선으로 그려진 장면들은 조용하지만, 마음을 스치는 감정은 결코 잔잔하지 않다. 뚝뚝 떨어진 먹의 무게와 여백의 간격에서,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감정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의 작업 테이블이 고스란히 재현된 공간도 시선을 끈다. 연필, 잉크, 붓, 책갈피, 그리고 반쯤 마신 커피잔까지, 작업의 흔적들이 ‘그림책이 태어나는 자리’의 숨결을 전한다. 마치 작가가 잠시 산책을 나간 사이, 우리가 몰래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기분이랄까.
영상에서 에토프 작가는 말수가 적지만, 그의 손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먹선 하나, 지우개 자국 하나까지 생생하게 기록된 그 작업 영상은 그림책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의 고요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책방 달토끼가 준비한 특별 선물도 놓치기 아쉽다. 도서를 구매하면 작가가 직접 작업한 실크스크린 엽서와 ‘순무와 시리얼’ 물티슈 세트를 받을 수 있다. 포장 상자 하나에도 이 전시가 품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실은 이 엽서를 받기 위해 다시 한번 찾고 싶을 정도다. 너무 예쁘다.
5월 24일까지 전시되는 5월 전시가 펼 펴지는 책방 달 토끼는 말 그대로 달 같은 공간이다. 작고 조용한 책방 안에서 두 개의 전시가 나란히 펼쳐지고, 그 가운데 하나는 냉장고 속에서 열린다. 엉뚱하고 따뜻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말끔히 지우는 순간이 여기 있다. 아마 이곳에서 '순무와 시리얼'을 만나는 일은, 나만의 시리얼 아침을 먹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서늘하고도 속이 따뜻해지는 맛 아닐까?
놓치지 말아야 할 한 줄....
이 냉장고는 오늘도 ‘순무’와 ‘시리얼’을 신선하게 보관 중입니다.
책방 달 토끼는 6월의 새로운 전시도 준비 중입니다.
글 쓰는 작가보다, 기록의 가치를 모두와 공유하는 ‘아키비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이죠
글| 조연섭_ 동해문화원 직원